서울교화 100년, 서울교구 교당탐방  33. 강남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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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화 100년, 서울교구 교당탐방  33. 강남교당
  • 박순용 편집장
  • 승인 2024.03.06 21:59
  • 호수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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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교화의 모델, 강남교당
교도에 의한, 교도를 위한, 교도의 교당으로 자리매김

서울교화의 희망탑이 되고자 꿈을 꿨던 강남교당 교도들은 ‘원하라 구하라 힘쓰라’라는 기도에 의지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며  ‘오고 싶은 교당 머무르고 싶은 교당’으로 법열에 넘치는 법회속에서 스스로의 신앙심과 수행력을 키워나가면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은 물론이고 1인 1역의 봉공활동으로 활불공동체로서 자타력을 가진 누구나 부러워하는 그런 교당이 되었다.
400석의 대각전을 거의 채우는 출석 교도들이 두손을 모으고 심고가를 부르는 것이라든지, 성가대에서 노래 공양으로 법회 분위기를 더욱 성스럽게 하는 것은 여느 교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강남교당이 처음부터 그런 교당은 아니었다. 대도시교화의 모델이 되겠다고 기도를 한 것이 2천일이 넘으며 교도를 위한, 교도에 의한, 교도의 교당의 기치를 드높이며 교무와 교도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 방향을 향해 다함께 적공하고 정진하고 기도한 덕분이다.  
강남교당은 원기 66년 논현동에서 봉불식을 하고 설립되었다. 우이동교당의 젊은 교도들 중심으로 태동되었다. 원기 69년 양재동 신축부지를 매입하고 신축 불사를 한 양재동 시절과 대도시 교화의 모델이 되고 있는 자곡동 시절로 양분할 수 있다.
초대교무인 박청수 교무가 26년간 세계교화를 위해 55개국에 도움의 손길을 나눠주던 양재동 시절과 2대 교무로 이산 한덕천 교무가 부임하여 교도에 의한 교도를 위한, 교도의 교당을 만들고자 2천일 이상의 기도와 한 주도 빠지지 않는 법회에 총력을 쏟아 대도시 교화의 모델이 되고있는 자곡동 시절이다.

108배 수행 정진을 비롯하여 신입 교도훈련, 원시네마 상영, 원문화 센터개설 등 교도들의 니즈에 따른 소모임과 교리기초교실 등 신앙과 수행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매일의 릴레이 기도를 통해 만들고 꿈꿨던 시스템은 자곡동 교당으로 이전, 신축 봉불식을 하면서 그 진가는 더욱 드러났다. 
매주 신입 교도들의 인사가 끊이지 않았고 넓은 대각전과 교당 시설들은 양재동 시절보다 교도들이 교당에 더 머무르면서 교리공부와 선·요가를 비롯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문화의 옷을 입은 소태산 대종사의 교리는 법회를 통해 교도들의 마음에 봄바람을 일으켰고 이는 다른 지인이나 친지들을 교당으로 불러들이는 날갯짓이 되었고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교당생활이 즐거웠었다고 교도들은 이야기 한다. 
능동적인 교도들의 교화불공 바탕에는 교무들의 수고로움이 근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 시절을 겪으면서 그 교화 기세가 다소 주춤해진 강남교당은 현재는 4대교무인 지산 오인원 교감 교무와 호타원 김기은 교도회장이 강남교당을 이단치교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호타원 김기은 교도회장은 “교화단을 중심으로 교도들의 의견을 모아 교당정책이나 교당 운영을 하려고 한다”며 “최근 공양에 대한 건의가 있어 살펴보고 진행했다”며 단장 중안 훈련 시간을 활용할 것이라 전했다.
새롭게 재가교역자 사령을 받은 해산 이대행, 공산 오성산, 은타원 이은식 부회장들이 다시 교당의 발전을 위해 신발끈을 조여매고 있다.
지금 강남교당에서는 적재적소에 맞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사람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교무진과 회장단은 입을 모은다.
기도로서 대중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고 한마음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하나로 이뤄가던 강남교당이 여전히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도들 모두 스스로의 공부심과 신앙을 둘러봐야 할 때다.
강남교당은 기본에 충실하자·자기성장에 집중하자·소통하며 함께 하자는 교화목표로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3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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