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 있는 골프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데 너무나 졸려 죽전휴게소에 들어가 차를 세우고 잠깐 눈을 붙이고 깨어나서 출발하려고 후진을 하다가 뭐가 닿는 느낌이 있어 나와 보니 내 차가 뒤에 주차해 있는 그랜저 옆구리를 살짝 긁었는데 그 차에서 아주머니가 내려 프로처럼 핸드폰을 꺼내 현장사진을 찰칵 찰칵 찍고 있었다.
나는 명백하게 나의 잘못이므로 명함을 건네며 “죄송합니다 수리하고 청구하면 전액 변상하겠습니다”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보험사에 연락하여 깨끗이 수리해드렸다.
일주일 후 여의도 아주머니로부터 차를 찾았는데 완전 새 차가 되어서 너무나 기분이 좋으시다고 남편과 함께 밥을 사겠으니 여의도에 오실 때 연락을 해달란다.
차를 산 지 7년이나 되었고 요즘은 딸이 타고 다녀 잔 기스가 많았는데 사장님 덕분에 새 차가 되었다고 들뜬 목소리로 감사전화를 주셔서 그런 마음씨를 가지고 계시니 전화위복이 되어 좋은 일이 생긴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한 달쯤 지나서 한 통의 문자가 날라 왔다.
“사장님 덕분에 차를 깨끗이 만든 사람입니다. 제가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여의도로 오실 때 연락주시면 남편이 접대를 하시겠답니다. 꼭 연락 주세요”
즉시 전화를 해서 만날 날을 잡았다. 남편과 함께 나온다니 더욱 마음이 편했다.
드디어 D-day다. 남편과 예쁜 딸이 함께 와 있었다. 특별한 사연이 있어 만난 인연인지라 서로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쳤다.
그 분은 그날 오산에 빌딩이 있는데 병원을 입주하고 싶은 분이 있어 보여주고 오다가 나처럼 졸려서 죽전휴게소에 들려 잠깐 쉬는데 “꽝”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나와 보니 내 차가 사고를 냈다며 화가 나서 그 전에 경운기를 몰다가 사고를 낸 아저씨에게는 돈을 안 물렸는데 내 차가 있어보여서 변상하라고 했단다.
27살짜리 외동딸은 영국에서 디자인전공 유학중이며 본인은 강릉에서 유치원경영 20년, 남편은 KBS에 다니며 자상한 모범가장이란다. 맛있는 식사 후 우리는 오래된 친구가족처럼 허심탄회하게 집안얘기, 종교얘기, 정치얘기까지 2시간 반 동안이나 나누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끼리 호기심이 발동되어 하는 얘기에 빨려들어 서로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크게 공감하며 박수를 치고 헤어졌다.
세상엔 많은 음식점이 있는데 내가 안 가본 음식점이라고 맛없는 집은 아닌 것처럼 내가 만난 지 오래 안 되었다고 안 좋은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아들만 하나 두었는데 그 집은 딸 하나를 애지중지 예쁘고 훌륭하게 잘 키웠다.
세 식구의 단란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아내의 전통자수 관람을 미끼로 8월 달에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음식점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딸이 참 예쁘게 생겼다며 우리 집 초대에 찬성하였다.
그 후 우리 집에도 그 집 모녀가 방문했고, 우리도 그 집 강릉 유치원을 방문하고 오늘날까지 깊은 교분을 유지하고 지낸다. 우리는 꼭 만나야 할 인연인데 안 만나지니까 교통사고를 내서 만나지게 되었다고 얘기하며 친하게 지낸다.
오래 사귄 사람이 아닌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 많다.
인연은 어떻게 만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 부부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기쁨에 빠져 있다.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