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태바
영화
  • 한울안
  • 승인 2001.03.27 0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번지 점프를 하다


감독 김대승

「번지 점프를 하다」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단순하고 평범한 영상임에도 과거와 현실, 전생과 현생간의 긴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교차편집으로 독특한 색깔을 자아낸다. 특히 아직 윤회(輪廻)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 시대에 윤회를 기본전제로한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큰 호기심을 자극한다.
성철스님은 한 때, 현대인이 불교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구의 과학적인 연구성과를 소개하면서 전생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책을 펴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인지 이제 전생에 대한 믿음은 ‘전생여행’이라는 주제로 쇼프로의 단골메뉴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교의 윤회에 대한 세계관은 동양보다는 서양에서 더욱 보편화되고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듯 하다.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한 「천국보다 아름다운」(1998)은 불교의 육도윤회 세계를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콘텍트」(1997)도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 ‘언어도단의 입정처(言語道斷 入定處)’자리를 영상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새로운 액션 영화를 개척한 「매트릭스」(1999)도 그 줄거리의 배경은 불교적 깨달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세계에 대한 투철한 연구와 깨달음에 바탕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사후 세계에 대해 그것이 무슨 ‘가치’를 가진 것인가? ‘전생여행’을 통해 전생은 ‘인과’에 대한 믿음보다는 현대판 신비주의, 상업성으로 물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비판의 정당성은 ‘번지점프를 하다’는 영화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사람들은 감독이 제시한 사랑하는 여인이 남자(학생)로 태어나고 그 학생에 대해 이병헌(교사)이 느끼는 운명적인 사랑에 유혹되었다가도 그래도 ‘남은 가족을 버리고 죽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단적비연수’처럼 지독한 증오와 정신병적인 애착이라면 모를까.
영화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랑, 운명’이었다고 변명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갖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며 관념성, 비현실성을 드러낼 뿐이다. 「사랑과 영혼」(1990)이 주는 감동은 귀신, 저승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호기심이지만, 사랑의 본질, 정의에 대해 통속적일망정 충실했기 때문이 아닌가.
사랑은 남녀간을 잇기도 하지만 가족과 사회, 민족, 세계를 넘어 모든 존재를 엮어내는 우주적 끈이기도 하다. 「번지점프」는 이런 사랑에 대한 연구없이 상업적 호기심으로 사랑의 보편적 가치를 희생시켰다.
한용운 스님은 ‘깨닫고 나니 전생도 없고 극락도 지옥도 없더라’고 깨달음의 실상을 말했다. 숙명적인 ‘인연의 끈’에 대해 부처님이 말씀하신 본의는 무엇일까?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는 지선(至善)의 절대자리로 답한다. 「콘택트」는 ‘일체가 마음의 짓는 바(一切唯心造)’임을 통해 답한다. 「번지점프」는 묵묵부답?
배우들의 톡톡 튀는 코믹 연기, 수채화처럼 담박하면서도 생기발랄한 영상,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 여러가지 재미는 있으면서도 사랑에 대한 무지로 끝맺게 되는 것이 아쉽다.
<박동욱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