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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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
  • 전재만
  • 승인 2001.1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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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물간 남성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 그들은 지방의 작은 호텔에서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애닯은 스텝을 이끌어주는 밤무대의 쓸쓸한 블루스처럼 위태로운 해체전야의 밴드다.
임순례 감독은 해체전야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4인조 밴드의 불안한 삶을 통해서 그들의 꿈과 희망,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일탈과 위선, 그리고 그 사이를 거미줄처럼 끌어안고 있는 인간의 뜨거운 애정과 사랑을 그려나간다.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이 시대의 다양한 삶을 상징하는 하나의 파편을 이루며, 그 파편이 작든 크든 빨갛튼 노랗튼 동등하게 자신의 색깔을 내며 우리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
팀의 리더인 성우는 팀의 해체를 막고 사춘기 시절부터 꿈꿔온 자신의 음악세계를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올겐주자 정석에게 음악은 수단일 뿐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너무나 많은 사람처럼 그 역시, 하루 밤 사랑의 노예로 인생을 살아간다. 성실하지만 좀 모자란듯한 드러머 강수는 정석에게 수없이 여자를 빼앗기자 그 배신감을 못이겨 자신을 파괴시키다가 끝내는 버스 운전사로 인생 길을 바꾼다. 그리고 주변에 성우에게 학창시절 음악을 가르켜 주었던 음악학원 원장과 성우의 첫사랑 인희, 호텔 보이이지만 스타를 꿈꾸는 기태, 또 성우의 학창시절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첫 멤버였던 지금은 약사인 민수와 환경운동가인 수철, 그 외 공무원 친구가 있다.
이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꿈과 가끔은 피로에 지친 술 한잔에 떠오르는 추억 속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3~40대라면 학창시절 동창이나 친구들에게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제각각 하나의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빠져들게 할 만큼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우울하다. 돈을 많이 버는 친구도, 공무원을 하고 있는 친구도, 음악학원 원장도, 성우의 첫사랑 인희도 우울하다.
그러나 바로 이들이 대부분 우울하고 힘들고 외롭다는 것이 임순례 감독의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그리고 임순례 감독은 이들이 왜 우울하고 힘든지, 그들의 아픈 과거를 하나씩 들춰낸다. 음악학원원장은 항상 술에 찌들어 있다. 음악을 가르치면서도 관객들은 그가 왜 음악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성우에게 술주정 가운데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다. “온가족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오마니가 집 물독아지에 물이 비었다며 물을 담아 놓고 오겠다는 거야. 그 때 배가 왔지. 우린 떠밀려 떠날 수밖에 없었어.”
이 간단한 술주정 한마디에 관객들은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 원장의 술주정을 감싸안게 된다. 이렇게 임순례 감독은 잊고 있던 분단의 아픔을 내보이고 그를 다시 감싸안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깊은 상처를 직시하게 만들고 치유하게 만든다.
또 한 장면을 보면, 성우는 단란주점의 반주자로 연주를 하고 있다. 노래가사 모니터에는 해변의 벌거벗은 여인이 바닷가를 질주하고 있다. 그 때, 여자들과 엉켜 노래하는 남자들은 돈을 흩뿌리며 옷을 벗으라고 한다. 여자들은 모두 옷을 벗는다. 음악에 맞추어 벌거벗고 노는 가운데 한 남자는 성우에게 다가온다. 술을 권한다. 그리고 성우에게도 옷을 벗으라고 한다. 옷을 벗지 않는다고 시비를 건다. 다시 화면은 하와이의 해변과 벌거 벗고 뛰는 여자가 보인다. 다음장면은 무엇일까? 과연 임순례 감독은 성우의 옷을 벗길까? 아니면 그 자리를 ‘더러워서 못하겠네’라는 대사와 함께 뛰쳐나가게 할까? 다음장면에 성우는 맨 몸으로 기타를 연주한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는 노래가사 모니터로 향한다. 성우의 학창시절이다. 고등학교시절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밴드를 만들고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뛰놀던 행복에 겨운 때이다. 역시 시대의 치부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보이면서도 단순히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돈이면 다된다’고 외치는 그들도 단지, 꿈을 잊은 사람들일 뿐임을 보여준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일상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내보이면서 참회하게 만들고 우리가 잊었던 순수함과 꿈을 회복하게 만든다.
임순례 감독은 이 모든 것을 평상심의 심법으로 차분하게 펼쳐보인다.
놀라운 한국영화다.
<박동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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