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이 김기덕 감독의 의식에 동의하기 어려운 점은 첫째, 몸을 파는 창녀도 분명한 직업으로 등장한다. 둘째, 선화는 자신을 몸파는 여인으로 만든 것이 포주 한기이지만 한기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게 된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에 말려들게 되는 것은 ‘한기’라는 ‘나쁜 남자’의 매력에 관객이 빨려 들어가면서다. ‘한기’는 건달이면서도 의리와 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 못지 않은 진실함과 ‘사랑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기가 살아가는 동물적인 삶의 이유와 방식을 알아가면서 한기를 조금은 덜 미워하게 되고 ‘선화’라는 청순 화사한 여대생의 도둑질과 자만을 보면서 ‘선악’이라는 넘을 수 없는 금기가 하나로 통하게 된다. 동전을 던져 앞이냐 뒤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 같지만, 실은 앞이든 뒤든 동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동전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무기 수출을 부도덕한 악의 축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가공할만한 무기를 보유하고 언제든지 세계지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더욱이 그런 미국을 지지해서 권력을 잡아보려는 한국 정치인도 얼마든지 우리 주위에는 많다. 전세계적으로 상상을 초월한 불행과 전쟁과 인류의 목숨을 거래하는 미국은 세계인이 동경하는 부유한 부자나라다. 그런 미국의 존재방식에 비해 한기의 사랑은, 선화의 삶은 너무나 자비스럽지 않은가!
자기만의 도덕과 부도덕을 가르고 비현실적인 선과 악을 가르며 우리는 스스로 분별심에 빠져 자폐의 고통을 겪어 오고 있지는 않았나.
김기덕 영화는 그런 분별과 자폐를 벗어나 모든 것을 하나로 집어삼키는, 저 화엄의 바다로 한 발 한 발 내딛게 하는 힘이 있다.
<박동욱 편집장>
저작권자 © 한울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