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시대 이끌 국악인...정수인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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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시대 이끌 국악인...정수인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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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6.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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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사람들 정신 일깨울게요"
“전 판소리의 마지막 대목이 가장 좋아요. 심청가에선 심봉사가 눈뜨는 장면, 춘향가는 어사가 되어 금의환향한 이몽룡과 성춘향의 상봉장면이 최고죠."
판소리가 슬프고 한 많은 음악이라는 말에 절대 반대라는 정수인 교도(서울대 국악과 대학원생, 여의도교당)는 판소리에 담긴 민족정신을 사랑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판소리를 시작해 이일주 명창에게 사사받은 이래 정수인 교도(1980년 생)는 전주예고 3학년 시절 이미 심청가를 완창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무리한 연습으로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또 중학교 시절에는 스승님의 엄명에 따라 죽어도 못 먹을 것 만 같던 똥물을 마시기까지 했다.
“기능적 예술인의 길을 걷기보다는, 소리를 통해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정 교도는 “자신의 삶에서 원불교는 절대적"이라며, “원불교는 내가 참 나를 받아들이고 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소리가 되어 나오는 과정을 느끼게끔 해주었다”고 고백한다. 원기 76년 대종사 탄생 백주년 기념음반 제작시 어린이 성가를 부른 것도 그의 신앙심을 더욱 살찌우는 계기가 됐다.
어린 딸에게 음악적 소질이 있다고 판단,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가르친 어머니(이덕범 교도)와는 달리, 전무출신인 아버지(정성철 도무)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며 딸에게 국악을 공부할 것을 권했다. 과학기술고등학교를 동경하던 동생(정준경 교도)에게도 언니가 판소리를 하니 너는 대금을 배워 같은 국악인의 길을 가는게 어떠냐고 권했다는 아버지! 지금 정 교도는 아버지의 판단이 현명했음을 절감한다.
특히 그는 공부와 실기 연습으로 바쁜 와중에도 서원회(서울대 원불교학생 동아리)에서 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활달하면서 신앙생활도 열심이다. 정 교도는 외교통상부 ‘평화의 친구들" 문화부 이사로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홍보사절활동까지 하고 있다.
국악과 학생이라면 정기적으로 가는 산공부 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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