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유인...박원효 종로교당 청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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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유인...박원효 종로교당 청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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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4.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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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것은 원불교와 음악"
작년 10월 도덕발양대회를 열기 위해 금강산을 찾은 청운회원들은 금강산‘만물상’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대금을 멋들어지게 연주하던 한 사람을 잊지 못한다. 대금, 가야금, 단소, 기타, 색소폰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는데다 풍류까지 즐길 줄 아는 박원효 교도는 자신의 호적명이 바로 ‘환양’이라며 “지금껏 나보다 더한 한량은 만나본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금강산에 오르면 남북한의 통일을 염원하며 꼭 대금을 연주하고 싶었다”는 그는 산에서 대금을 불면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시원해진다고. 대금은 예로부터 세상의 온갖 재앙을 물리치고 화평한 세상을 만든다 하여 ‘萬波息笛’이라 불렸다는 유래가 있는 우리 민족의 꿈의 악기. 3년 전 한총련 출범식에서도 대금을 연주한 적이 있다는 그는 프로들조차 놀랄 정도의 실력으로 흔히들 전문음악인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음악에 대한 욕심만큼은 비우지 못했다”는 그는 “젊어서 그룹사운드를 조직, 미8군에서 공연해 본적도 있었다”면서 “음악은 나를 너무 가슴 아프게 했기 때문에,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이 지금은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서 틈만 나면 손가락으로 기타연습을 하는 통에 청바지에 구멍이 날 정도였고, 건축업계에서 일하면서도 뙤악볕 아래 차 안에서 신문지로 차단하고 연습하고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서 악기를 연주하고 지금도 가끔 밤샘 연습을 할 정도.
박청수 교무 등 교단 인재들을 많이 배출한 집안 출신인 박원효 교도는 “일원상의 표준을 잡은 아버지(박근양 교도)는 내게 존경의 대상이었다”면서 “어린 시절 세상에 원불교 밖에 없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법회에 가면 으레 무릎 꿇고 한 두 시간씩 있어야 하는 걸로 알았다”는 그는 “밥솥에 김나듯 신앙이 무럭무럭 익었다”면서 엄하신 아버지가 음악을 반대해 “기타를 배울 때는 몰래 숨어서 배워야 했다”고 고백하기도.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동시에 원불교라는 삶의 중심축을 통해 스스로 제어할 수 있었고, 교법을 통해 그는 사리분별과 작업취사의 힘을 얻었다. 박 교도는 “나는 법회에 나가 마음의 분진을 가라앉히고 살아간다”면서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 음악회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면서 살았다”며 “자기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정의가 뭔지 알고 살아가는 아들(박제민, 전 한총련 대변인)이 자랑스럽고, 자식들에게도 평생을 하나의 잣대로 살라”고 가르친다고.
正道를 걸으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그는 요즘 대중에게 보급하기 쉬운 성가를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대중들이 흥겹게 듣고 또 한번쯤 불러보고 싶은 원불교성가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뜻이 맞는 후배와 함께 틈만 나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새성가를 4곡 이상 만들면 교당순례를 하면서 성가 지도를 할 생각이라는 그는 뼛속까지 원불교인이었다.
서원정 기자 swon@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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