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아침 - 정인신
상태바
시를 읽는 아침 - 정인신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06.02 0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 산속이야기

“시를 쓰고 있나요?”
가끔 물어오는 선배님이 있습니다. 그럴때면 숙제를 못한 아이처럼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아니요,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나봐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작은 풀꽃 한송이에도 감동이 오지만 연필을 들어 글을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내가 안고 있는 과제로 무겁기만 하고, 그 하루하루의 일과에 동동거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여유를 찾아봅니다.
언제부턴가 시를 읽고 싶어졌습니다. 쓰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시를 찾아 외워보면 내 영성이 맑아질 것 같아서였죠. 그런데 아침 공사시간에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를 퍼나르는 교무님이죠. 화창한 5월의 어느날 아침, 조금은 상기되고 쑥스러운 모습으로 “제가 시를 한편 읽어도 될까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좋아하면 /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
처음 읽어준 시는 마종기님의 ‘우화강’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일은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강물을 거스르지 않고 함께 흐를 수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마음을 다 열고 살 수 있는 심우(心友)가 되지 않을까요. 대산종사님께서는 서로 창자를 이을 수 있는 심우가 있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연둣빛 색지에 시를 적어 방문에 붙여놓고 읽어봅니다. 정말 오랜만에 메마른 가슴이 시의 물결로 출렁거립니다. 그리고 시를 읽어주는 가족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집니다.
훈련오신 교도님을 환영하며 시를 읽었습니다. 마을에서 놀러오신 분에게도 시를 읽어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한편의 시에 감동한다는 사실입니다. 감동은 나를 일깨우는 일이요, 가슴뛰게 하는 일입니다. 포천교당 교도회장님께서 보내주신 색지에 시를 적어 나누고 있습니다. 그럴때면 잠시, 우리가 사는 곳이 시인의 집이 된듯하고, 우리가 시인이 된듯한 착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시인이 아닐까요? 사물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워 할 줄 알고, 타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할 줄 알고, 힘겹고 어려운 경계에도 그 속뜻을 헤아려보며 공부심으로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대종사님께서는 정기훈련 11과목 중에 심신작용 처리건과 감각감상으로 일기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일상 생활속에서 신앙하고 수행하는 가운데 어떤 사물이나 경계를 만나 일어나는 깨달음과 감상을 적어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대소유무·시비이해(大小有無·是非利害)에 걸림과 막힘이 없는 연구력이 생겨 공정한 취사의 표준이 세워진다고 했습니다.
영생을 향해가는 여행길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일들을 적어보는 일은 내 삶을 까닭있게 가꾸어가는 일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일기를 쓰다보면 시인이 되는 일도 한결 쉬워질 것 같습니다.
문득,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해 개척교당에 살 때 때때로 만나 시를 읽고 구연동화를 했던 어머니 시 사랑회·동화 읽는 어른 모임 가족들, 지금은 무얼 하는지 그날의 추억들 이 생각납니다.
시집 한권을 꺼내 펼쳐봅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박희준님의 시를 읽으며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오덕훈련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