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송만호 은평교당 교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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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송만호 은평교당 교도회장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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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종사님한테 사탕도 받았죠"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대종사, 정산종사, 대산종사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그 인연으로 깨우침의 기회도 가졌죠.”
교단 초창 당시 소태산 대종사를 친견한 할머니의 인연으로 6살적 대종사로부터 직접 사탕도 얻어먹었다는 송만호 은평교당 교도회장. 그래서 그에게는 생활과 신앙이 따로 있지 않다. 삶 그대로가 생활이고 신앙이라고 할까!
“대종사님이 ‘유는 무로, 무는 유로…’ 게송을 발표하였을 때, 아버지는 벽에 게송을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늘 외웠죠. 이것을 옆에서 보고 따라하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아침·저녁의 수도생활, 낮의 보은생활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어요.”

# 할머니 인연으로 대종사 친견
송만호 교도의 집안은 일찍이 홀로된? 할머니(영타원 이대교, 전무출신)가 원기 9년에 입교하면서 본격적인 원불교 집안이 되었다. 이에따라 아버지(송봉환)도 자연스레 전무출신이 되었고, 또 신앙·수행이 투철한 어머니(민성경)는 종사위에 올랐다. 또 그의 형제자매 3남3녀 중 1남 3녀가 전무출신으로 봉직하고 있다. 그는 이중 2남.
형(송정호)은 원광중고교 교장으로 퇴임했고, 여동생 송명호 교무는 서울교구 중구교당 교무로, 또다른 동생 송인호 교무는 감찰원 부원장을 역임한 후 어양교당 교무로, 그리고 막내 여동생 송경호 교무는 순천교당 교무로 봉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남동생(송성호, 온산서 약사)은 재가로 남아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특히 1935년 생인 그는 태어나자마자 할머니의 연원으로 입교하면서 소태산 대종사로 부터 직접 ‘만호’란 법명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이런 지중한 인연이 있기에 원불교 일이라면 묵묵히 밑거름 되었고, 현재 중병을 선고 받고도 은평교당 교도회장으로 교당 안팎을 챙기고 있다. 그의 이런 면면은 원기38년 원불교학생회 창설, 원기69년 온양교당 교도회장, 원기 86년 7월 안양교당 교도회장 등의 이력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 신앙으로 병 다스려
교당의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하는 송 교도는 주인의식이 투철하고 교도들의 어버이 역할을 덕으로써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오경덕, 주무)이 뒤에서 챙겨주고, 불평 없이 무조건 따라 준 덕분이다”며 은근히 부인자랑을 하는 송 교도. 이에 부인도 “시가집 법과 원불교 법을 따르게 된 것이 큰 복이죠. 그러니 자연히 복이 돌아와서 잘 사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대꾸한다.
이여정 교무는 “교당이나 교도들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솔선하여 도와주고 기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기뻐한다. 법회시간에도 독경소리와 성가소리가 제일 우렁차다. 그래서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송 교도는 1년 전부터 전립선 암, 당뇨, 심장질환 등 여러 가지 병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중병으로 의사의 수술을 권유 받았으나 수술하지 않고 신앙으로 이겨내고 있다. “좌선과 유·무념으로 병을 잊고 법으로 병을 이겨 내야지요. 14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교당에 나가 교단의 발전과 교화를 위해 기도를 했는데 요즘엔 집에서 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근황을 밝히기도.
김해인 기자 kms@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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