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아날로그 시대에서 우물쭈물 할 수 없다.-이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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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아날로그 시대에서 우물쭈물 할 수 없다.-이도진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11.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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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도권에 제2교정원 설치...원불교 상징하는 교당 필요
지난 11월5일 종법사님의 대사식이 성대히 거행되었음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이임하시는 좌산 종법사께서는 이임법문을 통해‘자비 지혜(慈悲 智慧)’를 강조하시었고, 새로이 취임하신 경산종법사께서는 “도미(道味)를 즐기며 심낙원(心樂圓)을 누리고 은혜를 베풀며 덕풍을 불리자”는 ‘도미덕풍(道味德風)’ 공부표준까지 제시해 주셨다. 교도의 한사람으로서 마음깊이 되새기고 마음공부에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 원불교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연원불(淵源佛)로 하고 불법(佛法)에 연원하면서 소태산 대종사께서 원불교 개교를 선포한지 어느덧 100여년이 가까워온다. 백주년을 앞둔 오늘날 우리 원불교는 국내외적으로 그 위상을 넓혀 가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4대종교로서 100여만 교도 확보와 600여개의 교당과 기관으로 그 위상이 높아졌고, 국제적으로는 70여개의 교당과 기관이 세계 여러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명실공히 우리 원불교의 좌표가 국제적 감각에 걸맞는 위치에 도달하고 있다. 시대는 바야흐로 급속한 속도로 변화하며 돌고 돈다. ‘IT’시대이며 ‘디지털’ 시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아날로그’ 시대 속에서 우물쭈물할 수는 없다. 견주어볼 때 우리 원불교는 100년 남짓한 짧은 역사 속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그러다보니? 조직과 관행이 아직도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점이 많다. 따라서 새로 취임하신 경산 종법사 시대를 맞아 우리 원불교 100년 대계를 위해 나의 작은 의견을 종합하여 보고자 한다. 우선, 수도권에 제 2 교정원을 설치하여 운용하자는 것이다. 수도서울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적 중심지다. 4대 종교로 발돋움한 원불교도 명실공히 타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역할을 할 때가 왔고, 새시대 새종교로서 또 국제적 종교로서 확실하게 일원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또 세계적 종교로서 좌표(座標)를 확실하게 할 날도 멀지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제 2교정원을 설치 운용함으로써 질적 양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된다. 현재 원불교 교당은 전국적으로 한마을 한교당의 분포로 널리 산재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오순도순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며 마음공부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제 삼자가 볼 때에는 영세성과 연약성이 엿보이게 되어 관심이 덜 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숫자적으로 많은 교당에 교역자를 배치하여야하는 문제가 제기되며, 많은 교역자의 양성이 필요하다보니 교역자의 교육에도 문제가 생겨난다. 현재 수도권 서울 지역만 하더라도 약 60여개의 크고 작은 교당이 산재하고 있다. 그나마 대부분 100여명 이하의 교도들로 구성된 교당이 많다. 이를 부분적 또는 지역적으로 통합하여 보다 큰 교당으로 발전시켜, 보기에도 그럴싸한 교당으로 합친다면 교역자 부족의 문제도 해결 될 것이고 또 질적으로도 향상 될 것이다. 또 제 삼자가 보더라도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특히나 서울 정도 되면 원불교를 상징 할 수 있는‘중추적 교당(Hub)'이 아쉽다. 성스럽고 웅장하고 멋있게 보이는 교당 하나쯤 서울에 있어야겠다.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느끼고 관심 갖게 하는 교당, 이왕이면 원불교의 상징이 한눈에 풍기는 그러한 중추적 교당이 있었으면 한다. 마지막 의견은 교화의 질적 향상이다. 우리는 시대 변천에 따라 마음을 활짝 열고 질적·양적 팽창을 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한다. 특히 질적 팽창을 위해서는 ‘인텔리’급 교도의 영입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교전 중심의 설법도 중요하지만 시대와 분위기에 맞는 사례를 포함해 그야말로 도(道)의 맛을 즐기고 덕(德)의 바람을 불릴 수 있는 교당, 도미(道味)를 즐기며 심낙원(心樂園)을 누려 마음공부인들로 하여금 늘 함께 일원대도를 찾아 극락생활을 하도록 하여야겠다. 현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존경쟁에서 뒤져서는 안되며 동시에 마음공부에도 열중하여야 한다. 즐겁고 명랑하고 텅 빈 마음속에서 마음공부 하는 길만이 주착심을 버리게 되고 또 그래야만 간절하게 우리 법이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일주일 동안 생존경쟁에 시달리어 심신이 피로한 몸을 이끌고 일요일 교당에 나와 좋은 설법 듣고 정진수행 할 수 있는 마음의 양식과 마음공부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교역자가 인도해주고, 또 교도는 열심히 마음공부에 노력하여야 한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엄청난 생존 경쟁을 이겨내면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경계 속에서 요란, 어리석음, 그름을 없게 하기 위하여 정(定), 혜(慧), 계(戒)를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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