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론일까? 연기론일까?-김정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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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론일까? 연기론일까?-김정탁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11.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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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정탁 교수의 세상읽기


불교의 핵심적 교설 중 하나가 ‘因緣’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因緣은 때론 緣起論으로, 때론 因果論으로 그 표현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표현이든 간에 서양, 아니 기독교의 이분법적 사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불교만의 독특한 세상 인식 방법이다. 물론 緣起와 因果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전적으로는 그 의미 구분이 분명치 않다. 緣起란 ‘무엇으로 기인해서 일어난다’는 뜻일 텐 데 원인과 결과를 의미하는 因果도 이와 마찬가지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緣起와 因果의 의미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특히 우리들 마음 공부 방식과 대조하면 더욱 그렇다. 유불선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고전에서는 ‘親因疎緣’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하는데 ‘因’은 가깝고, ‘緣’은 멀다라는 뜻이다. 이를 원인과 결과의 관점에서 보면 ‘因’이란 직접적 원인에, ‘緣’이란 간접적 원인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가 因緣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모든 원인들이 작용해서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런데 서양인의 머리 속에는 간접적 원인이라는 개념이 없다. 만약 내 앞에 사과가 떨어졌다면 ‘아~! 만유인력이 작용했구나’하고 직접적인 원인으로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람이 불어서 떨어졌다는 등의 간접적이거나 우연적인 이유는 객관성과 보편성을 절대시하는 서양 사상에서는 설득력이 없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이유들에 의해,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표현들에 의해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즉 因緣 중에서 ‘緣’은 무시하고, 오로지 ‘因’으로만 설명하기 때문이다. 내 삶만 하더라도 직접적인 ‘因’ 못지않게 간접적인 ‘緣’이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훨씬 많을 것이다. 만약 “지금 나는? 여기에 왜 와 있는가”라는 식으로 내 인생을 반추하면 ‘因緣’ 때문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의지 내지 노력(因)’으로 와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나도 모르는 이유(緣)’에 의해 와 있는 경우가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자! 우리들 삶을 넘어서서 더 넓은 시야에서 우리들의 존재를 한번 생각해 보자. 불가에는 無明 → 行 → 識 → 名色 → 六入 → 觸 → 受 → 愛 → 取 → 有 → 生 → 老死 → 無名의 ‘十二 因緣’이 있다고 하는데 ‘因’과 ‘緣’으로서 이 과정을 설명한 것도 기가 막힌 설명 방식이다. 이렇게 길고 긴, 그리고 복잡하고 복잡한 윤회 과정이 어떻게 눈에 보이는 직접적 변화인 ‘因’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因緣’이라는 표현도 관대한 표현이다. 오로지 ‘緣’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因果論’이 아니라 ‘緣起論’이 윤회에 대한 보다 적확한 표현이 아닐까? 그럼에도 우리들 마음 속에는 ‘緣起論’보다는 ‘因果論’이 더욱 성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런 경향은 기독교와 같은 타력 종교인 경우가 특히 심하다. 예를 들어 열심히 믿고, 기도하고, 수양하고, 봉사하면 당신은 하나님에 의해 구원 받는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요체인데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서는 이 구원이 상당 부분 ‘靈的’ 구원이 아니라 ‘物的’ 구원으로 둔갑하고 있다. 즉 믿음이 福의 ‘因’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세속적 구원을 비는 우리의 기복신앙과 다를 바 없다. 이화여대 종교학 교수인 최준식 교수도 이런 맥락에서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자본주의 정신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써서 유명해진 맑스 베버는 이 책에서 기독교인이 돈 버는 이유를 절약하고 열심히 일 한 결과라고 말했다. 靈的 구원을 목표로 하는 믿음을 세속적인 차원으로 끌어 내린 셈인데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신앙심과 세속적 富를 직접적 관계인 ‘因’으로서 파악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런 식의 믿음이 보편화되면 靈的 구원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목표 하는 신앙생활은 이런 직접적 因果가 아니라 간접적 因果, 즉 緣起로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緣起論에 입각해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우리들 마음공부에 진정성이 더욱 생겨날 것 같아서이다. 성균관대 / 원남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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