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종교-이경식
상태바
신화속의 종교-이경식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3.31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 햇빛을 못 보는 동굴의 화소


신화는 흔히 우주의 기원이라든가 신과 영웅에 관한 신성한 이야기라고 정의됩니다. 자아로서의 인간과, 그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서의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가에 따라 옛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나름의 통일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신화라는 것이 아득한 옛날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 아니라 실은 현재도 살아서 문화생성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죠. 신화 자체는 잊혀버릴 수 있지만 신화적 사고만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소린지 아리송하다고요?


예컨대 3월 신학기만 되면 대학 신입생들이 선배들에게 기합을 받고 시달리는 풍속이 사회문제로 등장합니다. 군대에선 신병들이 신고식을 치르느라 애먹습니다. 결혼식장에 가보면 신랑은 행진에 앞서 사회자의 요구로 푸시 업을 한다든가 신부를 안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한다든가 하며 애를 먹습니다. 이런 것들이 알고 보면 통과제의(initiation)라는 신화적 구조와 사고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이해가 되십니까?


정신문명의 통제를 벗어난 물질문명의 맹목적 힘이 인류를 파멸로 몰아가는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여, 학자들은 인류 구원의 해법을 기성의 종교나 철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신화에서 찾으려고 한다니 그것은 왜일까요? 그 이유는 신화가 인류의 집단무의식을 구성하는 보편적 상징, 즉 원형(原型, archytype)을 닮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원형적인 사고의 표상인 신화를 통하여 우리가 인간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 구원의 길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죠. 우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예를 가지고 신화의 세계에 접근하는 법을 생각해볼까요?


<삼국유사>가 전하는 신화는 이렇습니다. 하느님이라 할 환인은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가고 싶어 하자 세상에 내려가 인간을 다스리도록 허락합니다. 환웅은 천부인 세 개를 받아서 부하 신들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 세상을 교화합니다. 그런데 같은 동굴에 사는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환웅은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그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안 보면 사람이 될 것이라 합니다. 곰은 금기를 지키며 3·7일을 지내어 사람(여자)이 되었고, 호랑이는 실패합니다. 남자가 없는 여자(웅녀)를 위해 환웅은 일시 사람 몸이 되어 혼인하고 아기를 낳으니 이분이 단군왕검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화소(話素, motif)가 햇빛을 못 보는 굴속의 100일 혹은 3·7일이란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 기간은 열반 후의 중음(中陰)과 같은 것이죠. 축생(곰)이 중음을 거쳐 인도 수생(웅녀)하는 과정을 보인 것입니다. ‘백날’ 혹은 ‘세이레’가 지금도 민속에서 살아 있지만, 불교수입 후에 49일(7·7)로 바뀐 사정이야 짐작하기 어렵지 않죠? 서울문인회장 / 일산교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