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거듭나는 신앙의 속성-이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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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거듭나는 신앙의 속성-이경식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5.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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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화 속의 종교


지난번에 곰이 햇빛을 안 보고 지낸 기간이 중음이나 마찬가지라 했습니다만, ‘동굴’ 화소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간적으로 볼 때 이것은 무덤입니다. 중음이나 무덤이나 어차피 죽음을 전제로 하는 말이지요. 동굴에 들어가는 것이 사망이라면 동굴에서 나오는 것은 출생이니 동굴은 전생과 후생이 나뉘는 공간이네요. 여기에 ‘죽음과 재생’이란 신화적 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는데 이것이 아주 아주 요긴한 화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화에서 흔히 보듯이, 농경을 경험한 이들은 곡물의 종자가 땅에 묻히고 죽은 후에 새로운 싹으로 재생하는 과정을 익히 보아 왔습니다. 봄마다 죽고 다시 살아나는 주기적인 ‘죽음과 재생’의 실증적 체험은 그것이 식물계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롭고 정화되고 숭고한 생명으로 움트기 위해 한 알의 씨앗이 묻혀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념이 자연스레 ‘인간의 경우도 일단 죽어 땅속에 매장되는 것이 보다 빛나는 세계에 보다 행복한 존재로 태어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믿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커스라고도 불리죠)는 적에게 쫓기며 수소로 변신했다가 적의 칼에 마디마디 찢기어 죽습니다. 디오니소스 제(祭)에서 숭배자들은 이 과정을 재현하기 위하여 살아 있는 소의 살과 피를 먹으며 그들이 디오니소스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믿는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것이 없나요? 네, 맞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면서 이것이 자신의 살과 피라고 했습니다.


어떤 저승에선 디오니소스가 죽어서 매장됐는데 얼마 후 다시 살아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돼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가 죽어 동굴에 묻혔다가 부활하여 승천했다고 하는 이야기와 너무나 닮았죠? 맞습니다. 예수의 생애를 쓴 사람은 실화를 기록하기보다는 이런 신화적 구조를 반복한 셈입니다. 대각 전 대종사님은,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하는 그 생각마저 잊고, 점점 행하여도 행하는 줄을 모르고, 말하여도 말하는 줄을 모르며, 음식을 드시어도 드시는 줄을 모르는 지경에서 마을 사람들이 다 폐인으로 인증하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상징적 죽음이니 노루목 초가는 곧 동굴이요 무덤입니다. 후속하는 대각이 곧 재생이고 부활이죠.?


대종사는 화해리에서 정사종사를 만난 후 영산으로 데려다가 자그마치 8개월이나 토굴 속에 가두었음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신화적 구조로 보면, 그 토굴은 무덤이니, 거기서 신통 위주의 사도를 죽이고 정법의 도인으로 거듭나는 ‘죽음과 재생’을 재현한 것입니다.


9인 선진들의 법인기도 역시 그렇습니다. 원기 4년 8월 21일에 단도를 청수상 위에 올리고 사(死)무여한의 최후 증서를 쓴 뒤 결사(死)의 뜻으로 올린 심고, 이것은 상징적 죽음을 뜻합니다.? 백지장이 ‘혈인’으로 감응한 것이야말로 하늘이 이들의 상징적 죽음을 인증한 것이며, 9인 선진들은 혈인기도를 통하여 ‘죽음과 재생’이란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속인에서 성자로 거듭난 것이죠. 서울문인회장 / 일산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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