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의 종교 6
상태바
신화 속의 종교 6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8.16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용, 신화가 낳은 가장 매력있는 신


근래에 《만들어진 신》이란 번역서가 화제를 뿌리고 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에서 종교 때문에 세상이 온통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내몰리고 인간은 지옥에서 살게 되었다고 고발합니다. 여기서의 종교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같은 일신교를 가리키는 말이긴 합니다만, 고발당하는 이웃 종교를 보면서 우리도 같은 종교인으로서 깊은 성찰이 필요할 듯합니다.


도킨스의 말인즉, 애초에 있지도 않은 신을 만들어놓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쌈박질을 하고 있다니, 이건 한 마디로 미친 짓거리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성내고 질투하는 인격신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우상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언제 어디서나 신을 잘도 만들어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용신입니다. 용(龍), 드래곤(dragon)말입니다.


## 용이라면 뿅 가는 인간 심리


인간은 왜 신을 만들어내고 자기가 만들어낸 신의 노예가 되는 일을 자초할까요?? 인간은 자기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 초월적인 무엇인가를 갈망하게 되고, 거기에 의지하여 위안을 받고 대리만족을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판타지죠. 뻔히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판타지에 열광합니다. 그 환상적 초월자 가운데 하나가 용신(龍神)입니다. 제가 이래봬도 대한민국에선 용 테마로 문학박사 학위를 딴 최초의 연구자입니다만, 신기하게도 용신이 없는 나라나 문화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중국처럼 용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라도 있고, 일본처럼 짝퉁용이라 할 뱀(大蛇)이 고작인 나라도 있어서 편차가 크지만, 어쨌든 파충류를 모델로 한 초월자로서 용신은 거의들 가지고 있습니다.


판타지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애나 어른이나 용 판타지에 열광을 합니다. 보세요! 영화 <쥐라기공원> <괴물> <불가사리> <고질라> 그런 게 다 용 판타지입니다. <용가리> 가지고 실패한 심형래가 이번엔 <디 워> 가지고 승부수를 던지는 모양입니다만 둘 다 용 판타지입니다. 공룡이라고 하건 이무기라고 하건 오리지널은 용입니다. 그리고 모든 드래곤 판타지의 뿌리는 용 신화입니다.


드래곤 판타지는 영화뿐 아니라 소설,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지금도 왕성한 번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은 같거나 비슷할까요? 아닙니다. 엄청나게 다릅니다. 종교마다 용 판타지가 있는데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무속 등 다 차이가 있고, 같은 나라사람이라도 계층마다 그 이미지가 다릅니다. 용신은 그야말로 열두 가지 얼굴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매력이 넘치고 창조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판을 넓게 잡으면 감당 못 하니까 용 신앙이란 쪽에서만 이야기를 나누기로 합시다.


## 미르, 용신은 미륵불까지 간다


용(龍)이라는 한자말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엔 ‘미르’(혹은 미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미르’의 어원이 물(水)과 같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르(龍)는 본래 수신입니다. 이 수신이 농경민에게는 비를 내리는 우신(雨神)으로 발전합니다. 때맞추어 비가 내리느냐 마느냐가 농사의 풍흉을 좌우하다 보니 우신은 다시 농신(農神)으로 승격됩니다.


그런가 하면, 이 수신은 방죽이나 저수지를 지키다가 강으로 나가고 거기서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마침내 용은 바다의 신, 해신(海神)으로 격상되고 수궁에서 왕 노릇을 하다 보니 용왕이 됩니다. 어민들은 항해의 안전을 용왕에게 빌게 되고, 더 나아가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빌다 보니 해신은 어신(漁神)으로 발전하는 것이 농신의 경우와 같습니다. 성경 중에 <요한계시록>이란 것이 있습니다만, 거기에 용이 등장합니다.


사탄의 딴 이름이니 악룡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때문에 서양에선 악룡 이미지가 압도적이지만, 동양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의 용을 보면, 애초엔 나가(那伽)라고 불리는 코브라가 악룡으로서 부처님께 위해를 가하려 하지만 곧 감화되어 부처님과 불법을 보호하는 호법룡이 됩니다. 불화(佛畵)를 보면, 실천 제일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타고 다니고 지혜 제일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다니듯이 자비 제일 관음보살은 용을 타고 다니잖습니까. 대승불교로 오면서 용은 고승대덕의 비유로 쓰이기도 하고 숫제 부처님을 상징하게도 됩니다. 아마 중국에서 용이 제왕 상징으로 쓰이게 된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미륵불의 용화회상(龍華會上)과 맞물리면서 용과 미륵은 유착됩니다. 더더구나 우리나라에선 ‘미르’(龍)와 ‘미륵’(佛)의 혼동이 생기면서 용이 미륵불이 되는 대책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답니다.


그러니 후천 주세불은 길룡리에서 나시어 신룡동에서 전법하시도록 점지되어 있나 봅니다. 최초 견성인가를 받은 삼산 김기천 종사는 여의주를 받아먹고 환골탈태하고, 아홉 제자는 구룡헌에서 도를 닦고, 좌산 상사는 미륵산 기슭 용은정사에서 정양 중이십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