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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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 저기요!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11.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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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성하 교무의 미국교화 이야기

출가하고서 처음 어른들께 가장 많이 들은 법문은 ‘죽은 폭 잡고 살아라’ 혹은 ‘안 난 폭 잡고 살아라’와 같은 주로 격한 훈사(?) 들이었습니다. 나름 비장하던 시절이라, 그 말씀을 은장도 같이 품고 있다가 가끔씩 일기 같은 데다가 꺼내쓰며 혼자 거룩에 겨워 하곤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터지지만, 당시는 그나름 감격시대라 어찌나 진지 하였던지요. ‘아상’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죽을 각오로 정진해야 한다는 말씀임을 모르는 바 아니었습니다.


출가한지 십년이 지나고 교화현장에 살면서 그 말씀을 다시 새롭게 새기게 됩니다. 이 곳은 눈밝아 먼저 대종사님을 찾아오는 이도 없고, 누구를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새로운 누구를 만나도 시원하게 척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옷고름을 꼬아 잡고 한바퀴를 빙돌고서야 말이 나오는 주변머리를 생각하면 교화의 제일 마장은 본인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얼마전 얘기를 고백하자니 참 못난 제가 송구하기까지 합니다. 교당 식구들끼리 머룬벨이라는 곳으로 단풍 구경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콜로라도를 소개하는 그림 옆서나 달력에 반드시 나오는 곳이니까 우리같은 촌 사람들은 꼭 봐야 한다고 나섰습니다. 주정부에서 오염을 막기 위해서 몇 년 전 부터 머룬벨 입구부터 셔틀 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에 입구 주차장에 모두 차를 세우고 티켓을 산후에야 머룬벨을 볼 수 있습니다.


셔틀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기다리는데 뒷쪽에 꽤 젊어 보이는 한국인 한 가족이 서 있었습니다. 교당 식구가 많아서 그 가족에게 우리 앞에 서라고 얘길 하다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 가장이 교당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볼더시에 있는 미국 기상청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가족이 모두 5월에 미국에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업이 업인지라 자동적으로 ‘5월에 들어왔다면 아직 콜로라도가 낯설겠구나. 우리 교당 나오면 딱 좋겠구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내 한인 사회의 크리스챤 파워가 그리 만만하던가요? 워낙 기독교 터가 센곳이라 교회 다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인데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서로 민망해지니 그 질문은 일단 패스 했습니다. 또 ‘한국 분이세요?’ 하고 말튼 지가 몇 분이나 지났다고 교당 얘기냐 싶기도 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상대 해야지 목적으로 상대를 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마음에 이런 저런 볼더 지역이야기를 하다가 ‘그럼 구경 잘하시라’며 버스에서 내리며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머룬벨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그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당 하숙생 꼬마와 저 가족 우리 교당 나오면 좋겠다고 얘기를 나누며 그 가족과 헤어지고 우리는 에스펜(Aspen)이라는 옆 도시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에스펜을 구경하는 도중에 식당을 찾는 그 가족을 세번째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가족을 또 만나서 결국 하루에 네번을 만난 셈이었습니다. 사실 둘러보는 곳이 뻔하게 한정되어 있어서 어디서든 만날 수 밖에 없지만, 어떻게든 의미 부여를 하면서 아무래도 이 집과 인연인 것 같다고 밀어 부치고 싶은 마음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르는데 차마 초면에 들이 밀기가 속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주머니속의 명함만 만지작 거리며, ‘저..저..저..저기..저기…네, 구경 잘하세요.’하고 엄청 더듬다가 한국 마켓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습니다. 커뮤니티가 작아서 마켓에서 대개 한번쯤은 부딪치니까요. 하지만 그걸 누가 어떻게 기약할까요? 어찌나 아까운지 교당에 돌아와서도, 이 글을 쓰면서도 변변치 못한 주변머리를 탓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종사님은 정산종사님을 직접 만나러 가셨는데요. 교무가 직접 찾아가진 못할 망정, 백천 사마외도라도 교화를 해야 할 이 마당에 이 뻣뻣은 뭐냐고, 벽에 머리를 쥐어 박는 중입니다. ‘안난 폭, 죽은 폭’ 법문이 망치처럼 가슴을 칩니다. 이 법문이 지척이 되고, 이 법문이 제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날, 인천대중, 구름같은 대중의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겠지요.. 휴우~ <덴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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