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흐름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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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흐름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11.08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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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한혜정 연세대학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90년대에는 여자아이들 낙태가 심각했습니다. 특히 세 번째 아이의 경우, 대구에서는 75%가 남자고 25%가 여자아이였다고 합니다. 그 만큼 많은 생명을 죽인 것이지요. 제가 조한혜정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우리 현실을 한번 각성시켜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그 후로 여성운동들을 통해 우리 여성들은 굉장히 많은 권리를 얻어냈습니다.


최근에는 외무고시에 여성 합격자가 40%를 넘어서면서 남자들이 공포와 위협을 느끼는 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남녀차별이 차츰 없어지면서 여성들이 대학을 가고 고시를 통과하면서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편에서는 여자들이 똑똑해지고 강해져서 못살겠다는 아우성도 들리고 있습니다.



# 불안한 미래,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화하는 데는 무엇보다 부모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여자들이 똑똑해졌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는 부모들 때문입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를 하나 밖에 안 낳다보니까 아이에 대한 욕망이 엄청납니다. 이들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모든 자산을 투자해 이른바 킹콩걸을 만들어 냈습니다.


옛날에는 그 집안에서 인물 한사람만 나와도 그 사람이 온 집안을 다 먹여 살렸습니다. 누이들이 식모살이 하면서 남동생을 판사 만들어 놓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연봉 5억을 받든 10억을 받든 자신의 미래조차 책임질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본과 시장만 자유롭지 개인은 하나도 자유롭지 못한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들의 삶은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어디를 가서 돈을 조금 받더라도 ‘내가 열심히 하면 나라가 잘 될 것이다, 동생을 공부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돌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뼈빠지게 일해도 아파트 하나도 못 사고, 누구하나 도와 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시장중심으로 사회가 계속 가면서 문제가 되는 것이 고용 없는 성장입니다. 기업은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용증대보다는 자동화를 추구하게 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행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뜨는 TV에서 딸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 사위에게 딸의 손을 넘겨주고 아내와 자유롭게 떠나는 광고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프리덤 50이라고 하지요. 요즘 40, 50대들이 이 광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 만큼 부모에게 무작정 기대기만 하는 자식들이 싫고 귀찮은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자식들 입장에서는 부모들에게 빈대를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경제가 고용없는 성장을 지향하면서 젊은 사람들을 뽑지 않으니 결국 불안한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남편이 젖은 낙엽이었는데 지금은 얘들이 젖은 낙엽처럼 부모에게 딱 달라붙어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때가 가장 클라이막스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IMF 때 경제와 일자리 불안이 커지면서 아이들은 부모들로부터 더 안 떨어지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독립을 하기 위해 부모에게 저항을 하는게 당연한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너무 불안하니까 저항을 하지 않는 효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 새로운 공동체 필요한 시점


이 무렵부터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2000년 초반에 인터넷 등을 통해 학교교육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졌습니다. 그러면서 급성장을 한 것이 바로 사교육시장입니다. 돈이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 유학을 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되거나 아이들 스케줄 철저하게 관리하는 대치동 엄마가 되었습니다.


국가나 공동체가 나를 책임져 주지 않기 때문에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공동체가 붕괴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빈부의 차이가 점차 우리 사회를 극명하게 갈라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이 빠져나갈까봐 돈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교류를 하면서 귀족사회를 만듭니다. 한마디로 돈이 무서워 폐쇄적이고 병적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아니구나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여 상부상조하면서 다른 대안들을 찾아나가기 마련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신자유주의적인 질서가 팽배해 있습니다. 강자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남아라고 하는 자기 개발서가 책방에 가득합니다. ‘전부 네 책임이니까 스스로 살아라’ 그런 겁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렇게 해서 살아남는 종족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인류는 협력하고 공동체를 이뤄서 지혜를 모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우리는 바닥을 치는 시점에 살고 있습니다. 그 대안으로 바닥을 친 사람이 새로운 관계를 맺는, 정말 인간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는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데 원불교와 같이 초심을 잃지 않고 지켜온 분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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