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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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에게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1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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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상심을 길러서 실수를 안 하는 학생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 무엇을 가지고 태어나는가? 그것은 잘 아는 바와 같이 육체와 생명과 그가 전생에 지은 업이다. 업에는 그가 일생동안 쓸 돈이라든지, 또는 갚아야 할 빚, 또는 맞아야 할 매의 양이 있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100대만 맞으면 되는 사람, 1,000대는 맞아야 되는 사람, 10,000대는 맞아야 되는 사람 등이 있다.


정업은 난면이라고 이러한 정업은 면할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때 부모가 이 매를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쳐놓지 않는다면 남에게서 맞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왕에 맞을 매라면 사랑의 매를 맞는 것이 낫다. 다시 강조하지만 부모가 안 때리고 라도 영원히 안 맞을 수가 있다면 부모가 구태여 엄교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남으로부터 증오의 매를 맞을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사랑의 매를 아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쁜 자식 매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라는 속담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동일한 이유로 인간은 태어날 때 자기가 일생에 먹을 떡을 갖고 태어나는데 어렸을 때 다 먹어 버리면 늙어서 먹을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고 했던 것이다. 왜냐면 이왕에 일생동안 해야 할 고생이 정해져 있다면 이왕 맞을 고생 미리 하는 것이 노후에 하는 고생보다는 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남에게는 너그러워야 하지만 자기에게는 까다롭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다저스 팀에서 에이스로 자리를 잡은 박찬호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공을 던질 수 없었던 것은 한국에서 잘못 배운 습관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아주 엄격하게 투수 벅을 잡는데 한국에서는 말썽을 두려워해서 어지간한 것은 눈을 감아 주어서 박찬호가 미국에서의 데뷔게임 때 연거푸 3번의 투수 벅을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심판들이 박찬호의 벅을 잡지 않고 봐주었던 것이 진정으로 봐 주었던 것이 아니라 박찬호의 버릇을 나쁘게 양성했던 것이다.


18세의 낫킹 콜은 어느 봄날 아버지와 함께 백인들이 사는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그 때 젊은 백인 청년이 길을 물었다. 그의 아버지가 길을 가르쳐 주는 순간, 느닷없이 젊은 백인에게 얻어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미스터’라는 존칭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남부의 백인이 지배하는 세계는 흑인들에 대해 그렇게 가혹했던 것이다. 코피를 흘리며 낫킹 콜의 아버지는 정중히 사과했다.


“I am sorry, Mr.”(미안합니다, 나으리.)


그것을 보고 있던 백인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낫킹 콜은 눈이 뒤집혀 불끈 주먹을 쥐고 백인에게 대들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잽싸게 아들의 팔을 끌며 나직이 그리고 세차게 타일렀다. “참아 낫, 지금은 안돼, 아직 안된다!” 집에 돌아 온 그는 밤새 울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마침내 낫킹 콜은 백인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가 바로 우리에게 미국 영화 ‘모정’의 주제곡을 부른 것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이다. 그가 참음으로서 그는 그를 저주하고 미워하던 백인들이 그렇게 듣고 싶어 하는 노래를 불렀고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던 것이다.


수능이 점수화가 되고 변별력이 확실하던 시절에는 실력 있어 많이 맞추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수능이 등급을 매기는 수준으로 쉬워지고 변별력이 없을 경우에는 평상심을 길러서 실수를 안 하는 학생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 항해하다 조난을 당했을 때, 영국의 선원이나 승객들이 옆 사람의 귀에 대고 침착하게 속삭이는 말은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 영국의 해군에서 만들어진 이 훌륭한 전통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질서를 지켜서 생명을 구했다.


130년 전의 일이다. 영국 해군의 자랑으로 알려진 수송선 버큰헤이드 호가 병사들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를 향해 항해하고 있었다. 케이프타운에서 65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위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쳤다. 시간은 새벽 두 시, 한밤중이었다. 선실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구조선은 겨우 세 척, 승객의 4분의 1 밖에 태울 수 없었다.


사령관 시드니 대령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갑판 위에 줄을 맞춰 부동자세로 섰다. 한 쪽에서는 부녀자들을 구명정으로 옮겨 태웠다. 마지막 구명정이 떠날 때까지 갑판 위의 병사들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생명을 구한 부녀자들은 이 의연한 모습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


사령관은 배 안에 있는 것 중 물 위에 뜰 물건을 바다 위에 던지도록 한 뒤, 병사들을 바다에 뛰어들게 하였다. 사령관은 다시 선실로 들어가 배에 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배를 떠났다.


최대한의 질서와 자제와 양보, 이는 비상시를 맞을 때마다 영국 국민이 충실히 지킨 훌륭한 전통이다. 자녀들이 시험장에서 어려움에 처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의연함이다. 그래서 수험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수를 줄이기 위한 평상심을 길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광일(덕균)교수 (중곡교당, 한양대 공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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