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조삼모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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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조삼모사의 삶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1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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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정탁 교수의 세상읽기

지난 주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졸업 한지 40년 만에 처음 열리는 동창회여서 연락을 받자마자 여간 마음이 설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사 제쳐두고 참석한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니 왠지 모르는 쑥스러움에 참석을 주저주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용기를 내 참석했습니다.


한마디로 반가움 그 자체였습니다. 40년이란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모두들 반가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서 하나같이 동심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날은 서로가 수줍어했던 여학생과 남학생의 구분도 없었으며, 가깝고 멀었던 친구들의 간격도 없었고, 또 짝사랑했던 여학생과의 거리감도 없었습니다. 40년이란 세월이 우리들의 섬세했던 감정들을 이렇게 무디게 만들었나 봅니다.


모처럼의 질펀한 모임을 갖고 집에 돌아오면서 초등학교 시절을 그려보았습니다. 즐거웠던 기억도 많이 스쳐 갔지만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모습이 가장 크게 그려졌습니다. 그 때는 중학교 입시가 있어서 학교생활이 오로지 공부로 귀결되었습니다. 심지어 6학년 때는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치해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구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 성적이 많이 떨어지면 교실 밖으로 내몰려서 지나가던 후배들에게 창피까지 주는 처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노력했지만 친구들 중에는 좋은 학교에 진학한 친구도 있고,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4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나니까 좋은 학교에 진학했다고 해서 모두 잘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실패했던 친구들 중에 더 잘 돼서 그야말로 멋있게 나타난 친구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2~3등 정도의 등수 차이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지금에는 1등과 꼴찌 사이에 별다른 차이마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만큼 우리가 성숙해진 걸까요, 아니면 숫자라는 기호의 교란으로부터 해방된 걸까요?


실제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성적이라는 기호, 학교라는 기호, 직장이라는 기호, 연봉이라는 기호에 너무 매달리면서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행복의 정도를 연봉이 얼마냐는 숫자로 표시된 기호로서 재단하고, 또 세칭 일류라고 하는 특정 대학의 기호에 집착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재수, 삼수마저도 감수해 왔습니다. 행복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데 성적, 대학, 직장이라는 헛된 기호들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탓이지요.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을 보면 유명한 ‘朝三暮四’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이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먹이로 주면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하니까 모두들 화를 냈습니다. 이에 주인은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그때서야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사태가 생겨날까요? 하루에 7개 주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는데 ‘3+4’이냐, ‘4+3’이냐는 기호 차이 때문에 원숭이에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우리들도 이런 기호의 장난 때문에 쓸데없는 희로애락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당장 좋으면 그것이 행복인줄 알고 좋아들 합니다. 그리고 당장에 싫으면 그것이 불행인줄 알고 슬퍼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좋고 무엇이 싫은 것입니까? 혹시 원숭이처럼 ‘4+3’은 좋고, ‘3+4’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기호의 교란으로 말미암아 행복과 불행의 끝없는 왕복 운동에 우리들 마음을 혹사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지난 주 대학수능 시험이 있었습니다. 시험 결과를 둘러싸고 수험생들 간에 희비가 교차하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좋은 점수를 받은 수험생은 좋아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실망하고…. 수험생이야 인생 경험이 짧아 그렇다 치더라도 학부모까지 덩달아 시험 결과에 일희일비 하는 것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부모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기호로서 자식의 좋은 성적이나 일류 대학 이름을 사용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이번 수능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수험생들이나 그 학부모들에게 혹시 위안이 될까 싶어서 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30여 년 전 1차 대학에 실패해서 당시 2차 대학이었던 성균관대를 다녔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이 길이 잘못된 길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 후 박사학위를 받고서 이 길이 아주 잘된 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왜냐고요? 그 당시 1차 대학에 들어갔던 친구들 대부분은 저보다 늦게 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박사학위를 받고도 모교에 자리가 나지 않아 기다려야 했는데, 그 때 저는 졸업생 중에서 유일하게 학위를 받고 왔기에 은사님들이 모셔가다시피 했습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이지요. 그렇지만 이번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들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이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40년의 흐름이 지나고서야 초등학교 친구들을 통해 또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원남교당 /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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