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들어 있는 말, 신비가 숨 쉬는 주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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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들어 있는 말, 신비가 숨 쉬는 주문1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1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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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경식 교도의 신화 속의 종교 8

어릴 때 일을 생각하면 아련한 동화처럼 세상이 온통 신비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 중에는 이런 것들도 있습니다. 모래톱에서 한 손을 바닥에 엎고 위에 모래를 쌓아 다지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연호했습니다. 그 다음에 손을 빼도 모래집이 안 무너지고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 주문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젖니를 갈 무렵, 흔들리는 이를 실에 묶어 잡아당겨 뽑으면 아파서 절로 눈물이 찔끔 흘렀습니다. 그래도 그 이를 지붕으로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외쳤지요. 그래야 새 이가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 666은 사탄의 숫자다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를 읽을 때쯤 되니 <아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보물이 숨겨진 동굴 문을 열 때 ‘열려라 참깨’를 외치자 바위문이 스르르 열립니다. 이건 또 얼마나 신기한 일이던가요! 《서유기》를 보면, 망나니 손오공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그의 머리에 씌워진 쇠테입니다. 손오공이 말을 안 듣고 장난을 치면 삼장법사는 관음보살이 가르쳐 준 주문을 외우고, 주문의 힘으로 이 쇠테가 옥죄어들면 손오공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꼼짝을 못하니 쇠테는 소의 코뚜레만이나 되는 셈입니다. 손오공 자신도 주문 한 마디로 변신과 분신을 자재하고 여의봉을 능소능대하게 부립니다.


아무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말이나 문자 자체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이러한 주술적 신념체계를 언령신앙(言靈信仰)이니 언신사상(言神思想)이니 합니다.


숫자나 이미지 등도 기호학적으로 같은 효과를 가집니다. 사(四)가 죽을 사(死)와 같은 음이라 하여 넷이란 숫자를 기피하고, 심지어는 빌딩에서 4층을 건너뛰어 5층이라 하거나 승강기의 층 표시도 4층 대신 F층이라 하는 짓이 그것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의 죽음과 관계된다는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하게 안다든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이라는 숫자를 사탄의 징표로 삼아 금기시하기도 합니다. 한국인이 3을 신성시하고 서양인이 7을 선호하고 중국인이 8을 좋아하는 것 등도 그렇습니다.


신화를 비롯한 설화 가운데 언령사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숨쉬고 있습니다.


<가락국기>에 보면 사람들이 하늘 임금을 맞이하는 의식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약 안 내밀면 구워 먹으리라” 하고 노래하니까 하늘에서 금합에 담긴 황금알 여섯 개가 내려오고 이들이 부화하여 여섯 가야의 왕들이 됐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북아 거북아… 구워 먹으리라’ 이 말의 주술적 효과가 상당했다나 봐요.



# 거북아 거북아 너 구워 먹을 거야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 태수가 되어 어여쁜 아내 수로를 대동하고 부임하는 길입니다. 한번은 해안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동해 용왕이 수로를 납치해서 바닷속 용궁으로 데리고 갔더랍니다. 마누라를 빼앗긴 순정공이 넋을 놓고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몰려 와서 노래를 부릅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인 빼앗아 간 죄 그 얼마나 크랴 만약 안 내놓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그러자 용이 수로부인을 데리고 나와 돌려주더란 것입니다.


신라 향가에는 이런 언령사상이 깔린 것이 꽤 있습니다. 예컨대 불길한 조짐이라는 혜성이 나타나매 노래를 불러 이를 물리쳤다는 <혜성가>라든가, 해가 둘이 나타나는 흉조를 처치하느라 이 노래를 불러 해결했다는 <도솔가>라든가, 질병의 귀신을 물리친 <처용가>나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이용한 <서동요>, 관음보살에 빌어 눈먼 딸의 눈을 띄운 <도천수관음가> 등 헤아리기 바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전문적 주술사의 주가(呪歌)입니다. 예컨대 무당의 푸닥거리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성황반> 같은 것을 보자면 무의미한 여음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 다리러 다로리 로마하/디렁리 대리러 로마하/도람다리러 다로링디러리/다리렁 디러리



이런 식인데 이걸 보면, 글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무의미한 문양에 불과한 부적의 효과와도 통합니다. 어찌 보면 의미를 싣지 않음으로써 더욱 신비한 주술성을 확보한다고 할만도 합니다.


근래에 애들한테 인기 짱인 소설, 조앤롤 링이란 영국 작가의 판타지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백 가지도 넘는 마법 주문이 있는 모양입니다. 은밀한 대화를 나눌 때 쓰는 ‘머플리아토’는 남이 그들 말을 못 듣도록 하는 방음 주문이고, ‘실렌시오’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안 나오도록 하는 침묵 주문이고, ‘스투페파이’는 상대를 실신시키는 기절 주문이라는 식입니다. 서울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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