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세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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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세우는 사회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12.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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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영석(원불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 풍경1


며칠 전, 수능시험을 마친 고3 쌍둥이 여고생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전에는 부산의 한 학생이 지각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다가 사망했고, 최근에 한 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부터 당한 체벌로 두개골이 함몰되는 상처를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건 이후, 대인기피증세를 보여서 정신과 치료도 함께 받고 있다. 또 초등학생의 10명 중 1명이 과잉행동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언제부턴가 ‘학교 안’ 소식들이 적지 않게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교육상’이라는 이유로 용인되는 사회였던 것을 감안하면 ‘학교 안’ 이야기들이 사회문제화 된 것도 큰 사회적 변화이다. 그러나 사회로 나온 학교 소식들은 이처럼 그리 밝은 것이 아니다.


수능을 전후해서 성적을 비관한 수험생들의 자살은 연례행사처럼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신등급제, 논술시험까지 겹쳐서 학생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또 조기교육 열풍은 더 빠른 시기에 아이들을 경쟁의 무대로 내몰고 있다. 사람을 느끼고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가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누군가를 눌러야만 살 수 있다는 법부터 배운다. 옳고 그름을 배우는 것보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못한가를 먼저 습득한다. 자유와 평등, 평화와 인권 등 사회를 살아내면서 가꾸어 나가야 할 가치를 배우는 대신 위계질서에 길들여짐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더 돈 많이 버는 직장,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고등학교, 더 좋은 중학교에 아이들을 줄 세우고 있는 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의 이면에는 직장이든 학교든 좋지 못한 곳에 가면 ‘살기 힘들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몸이 아파도 비정규직이 되어서라도 아이들 학원비를 벌어야 하고, 자녀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 오늘도 졸린 눈을 비벼 떠야만 한다. 1등이 되기 위해, 빨리 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 풍경2


최근 정부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이라는 입법취지를 내세우며 차별금지법안을 내놓았다. 사회적 약자의 삶에 정부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그동안 한국사회는 평등을 실현하는 기본법이 없었음을 반증해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일부 보수 기독교계와 재계 등의 반발로 차별대상 중 성적 지향, 학력 및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에 대한 차별은 인정되는(!) 차별금지법안(?)이 만들어졌다. 때맞추어 얼마 전 네팔과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조활동가 3인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로부터 표적 단속이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강제출국 되었다. 출신국가에 대한 차별은 유효하다는 것을 법무부가 몸으로 입증해보인 셈이다. 아직 한국에서 인정되는 정상인(!)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이·삼류대학 출신은 포함되지 않는다.


위의 풍경들은 한국 사회가 ‘1등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와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포용적이지 못한가를 나타내준다. 일등이 되지 못할까봐, 정상인이 되지 못할까봐 걱정해야 하는 사회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이야기 할 자리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언제나 1등은 한 명 뿐이며 대다수는 일등이 아닌 삶을 살아야만 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과 언제나 인간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비인간적 참극은 ‘저들과 나(우리)는 다르다’는 최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2007년도 저물어간다. 여전히 인권의 현실은 날씨처럼 춥기만하다. 다가오는 새 봄에는 움트는 뭇 생명들처럼 존재 그 자체가 아름다운, ‘진짜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대접 받으며 어울려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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