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의 물, 종교 속의 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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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의 물, 종교 속의 물 1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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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경식 교도의 신화 속의 종교 11

원시신앙은 산 바다 돌 나무 같은 자연물이나, 해 달 별 등 천체에 대한 외경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 많습니다. 신화에서도 당연히 이들에 대한 인식과 설명을 담고 있는 것이 흔하지요.


그런데 그 중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원소에 대한 것이 있어 주목을 끕니다. 물론 오늘날 화학에서 말하는 산소, 수소, 철, 금, 우라늄 하는 식의 화학원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단순합니다. 요즘엔 천연원소 90개에 인공원소 17개까지 합하여 107개의 원소를 말하지만, 고대에서 중세까지는 4원소설이 정설이었던가 싶습니다. 고대 그리스나 인도에서 동일한 4원소설이 통용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것이 세계적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4원소가 무엇이냐고요? 흙, 물, 불, 바람(지·수·화·풍) 등 이른바 사대(四大)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선 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들 4원소 가운데서도 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원소들보다 더 큽니다. 자연철학의 아버지라는 탈레스도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하였지만, 전 세계의 창세신화 태반은 물로 시작이 됩니다.



# 태초엔 물, 물뿐이었다네


알타이 신화의 경우, “태초에는 이 세상이 물바다였다. 하느님이 물속에서 흙을 얻어 땅을 만들었다” 이렇게 나옵니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태초에는 바다뿐이었다.” 이렇게 되어 있고, 바빌론 신화 역시 “태초에는 민물바다와 간물바다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기독교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리 말씀드릴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창세신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주도 등 무속신화에 약간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불교 전래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대신 우리나라는 건국신화가 주류입니다. 그러면 건국신화에서 물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요?


한국의 건국신화라면 이미 시조들이 태양의 상징인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신화와, 비를 내리는 용이 나오는 용신화를 한 차례씩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그 신화들을 단순화하면, 친가인 남자 쪽은 하늘의 신인 해(태양)에 줄을 서고 있고, 외가인 여자 쪽은 물의 신인 미르(龍)에다 줄을 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와 부여의 공동 국모인 유화를 봅시다. 하늘의 아들 해모수가 유화를 처음 만난 것이 웅심연이라는 못에서 입니다. 유화는 동생 둘과 함께 물에서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백의 딸이라고 했습니다. 하백의 정체인즉 물의 신으로서 백룡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몽의 외할아버지는 용이요, 어머니 유화는 용녀인 것입니다.



#남자는 해에, 여자는 물에 줄서다


신라에서는 박혁거세의 비가 알영부인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알영의 어머니가 누구냐 하면 우물 속에 사는 계룡입니다. 계룡이란 전에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머리가 닭 모양을 닮은 용입니다. 그러니까 혁거세왕의 왕후도 용녀입니다.


고려의 경우는 시조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서해용왕의 목숨을 구해주고 보상으로 용녀를 얻어 부인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고려사> 등 정사에 나오는 것이라면 무당이 굿할 때 부르는 무가 <군웅본풀이>에서는 아예 태조 왕건의 부인이 용녀로 나오고 있음은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한 두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하나, 육당 최남선은 일찍이 허 황후가 용녀임을 지적한 바 있고, 제주도에 있던 탐라국은 삼성혈에서 나온 세 신인이 고·량·부 세 씨족의 시조가 되었거니와 그들의 배우자가 된 벽랑국의 세 처녀들 역시 동해 용녀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한국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용 화소는, 농경민족으로서 물의 신이자, 비의 신인 용신을 끼지 않고는 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배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자들이 말하는 바, 태양의 부성적 성격과 물의 모성적 성격의 대비와도 일치하는 것이어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서울문인회장, 일산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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