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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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3.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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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현숙 교수의 생활의 발견

무자년 새날이 밝았다고 떠들어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 되었다. 긴 겨울 방학이 끝나고 입학식을 시작으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것이다. 입학식 때에는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하는 만큼 옷차림에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입학식 날 아침에 뭘 입어야 할지 허둥대지 않기 위해 미리 무엇을 입고 갈지 골라두는 센스가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내 경우는 꼭 두 벌을 준비해 둔다. 하나는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화사한 분위기의 옷과, 또 하나는 두툼하고 따뜻한 겨울용 옷이다. 아니 따뜻한 새봄에 두툼한 겨울옷이 뭐가 필요해? 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지만, 파릇파릇한 새봄에 겨우내 입었던 두툼한 옷을 벗어버리고 꽃단장 해보려다 살갗 에이는 ‘꽃샘추위’에 큰 코 다쳐본 사람들은 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꽃샘추위에 아랑곳 하지않고 얇게 입고 나갔다가 감기에 걸려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경험은 누구든지 한두 번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꽃샘추위’를 미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나에게 꽃샘추위는 고맙고 소중한 존재이다. 방금 전에 꽃샘추위가 야속하다느니,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니 해놓고서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우선은 꽃샘추위라는 표현이 너무나 예쁘고 귀여워서 저절로 미소 짓게 되기 때문이다. 꽃샘추위에 해당하는 말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는 나라들에 존재하는데, 대부분 꽃이 필 무렵에 찾아오는 추위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로는 ‘꽃이 필 무렵의 추운 날씨[A cold (windy) weather in the blooming season]’라고 밋밋하게 표현하고 있다. 일본어의 경우는 ‘꽃이 필 무렵의 차가운 날씨 (花冷え)’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특이할만한 것은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필 무렵에 날씨가 추워지는 것으로도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폴란드의 경우는 좀 더 현실적이다. 폴란드에서는 ‘꽃샘추위’를 ‘정원사의 겨울’이라고 하는데, 봄이 왔나 싶어 정원사가 정원을 손질하기 위해 나섰다가 추위에 깜짝 놀라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봄날을 방해하는 반갑지 않은 추위를 오히려 정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 ‘꽃샘추위’라는 말로 표현했다. 한자로는 ‘화투연(花妬姸)’이라 하는데, 꽃 피는 것을 샘하여 아양을 피운다는 뜻이다. 따뜻한 봄의 기운에 밀려났던 추위가 돌아서서 보니 사람들의 사랑을 한껏 받는 화창한 봄이 얄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한바탕 강추위의 위력을 과시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꽃샘추위’는 우리 곁을 떠나기 싫은 겨울이 가기 싫다고 애교어린 투정을 부리는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꽃샘추위라는 말은 우리 선조들의 따스함과 위트, 그리고 시적인 감수성, 운치와 정겨움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내가 꽃샘추위를 고맙고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까닭은 나에게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 소중함은 꽃샘추위가 지니는 상반된 의미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좋은 일에는 과하여 넘치지 말고, 안 좋은 일에는 좌절하지 마라!”라고 할 수 있다.겨울이 끝나고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3월에 함박눈까지 동반한 꽃샘추위로 꽃과 나무들이 얼어 죽는 해가 많다. 이것을 보면 꽃샘추위의 의미는 우선 인생이란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니, 좋을 때에 너무 희희낙락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불행에 대비하여 매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경고성 신호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행복 시작, 불행 끝~!”하면서 마냥 즐거워만 하고 있다가 갑자기 찾아온 불행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릴 때에 행복에 겨워 자만하지 말고 진중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시련에 대비를 해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게 꽃샘추위는 “좋은 일에는 과하여 넘치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한편 꽃샘추위는 이와는 정반대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혹독한 추위가 찾아와도 꽃은 핀다는 ‘희망의 전조’이자 봄이 다가옴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라는 점이다. 새벽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듯, 봄이 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꽃샘추위가 매섭고 혹독해도 꽃샘추위 때문에 꽃이 피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봄은 우리 곁으로 다가 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추위를 조금만 참고 견디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보면 꽃샘추위는 더 진한 꽃향기 날리기 위한 ‘시련의 시기’ 내지는 봄이 성큼 다가왔다가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시기’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꽃샘추위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줄 알면서도 해마다 초봄의 따스함을 가로막고 돌아오는 이유는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봄을 알리는 메시지 역할과 더불어 따스한 봄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즉, “안 좋은 일에는 좌절하지 마라!”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시련이 닥쳐올 때 이것을 ‘인생의 꽃샘추위’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부모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가 냉랭해졌을 때 이를 ‘사랑의 봄이 오기 전에 냉기서린 한풍’이라고 여기고, 이 차가운 바람을 녹일 수 있는 훈훈한 바람을 불어놓으려고 노력한다면 냉랭한 관계가 더욱 따뜻한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찬란한 성공을 위한 숨고르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재충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좌절하지 말고 꽃샘추위가 찾아왔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바로 다가올 따스한 봄날을 위해 준비를 차곡차곡 해두자. 그만큼 봄날이 빨리 찾아와 줄 것이다. 이문교당 /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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