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우리가 배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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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가 배려해야 한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3.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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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서연 교무의 우리는 하나입니다

“아내가 집을 나갔어요.” 바루다가 아무 연락도 없이 한국어 수업에 오지 않은 것이 궁금해서 그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런 대답에 실망과 걱정이 파도를 친다.


필리핀 여성 바루다는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추위가 한창이던 지난 1월에 한국 땅을 밟았다. 살면서 냉장고에서 나온 얼음은 보았어도 밖에 내 놓은 물이 언다거나 눈이 오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그녀가 한겨울인 1월에 한국 땅을 밟은 것이 아무래도 너무 힘든 첫 인상을 준 것 같았다.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내면의 상태가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어서 공감해 주었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데다 이제 한국 나이 19살인 바루다는 아버지뻘 나이 되는 남편을 너무 싫어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돌봐준다고 생각했는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사람으로 생각되기 시작하자 무엇하나 맘에 들지 않았다.


바루다의 남편 또한 고민이 많아서 나에게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았다. “쟤가 내 말을 통 듣지를 않고 청소도 안 하고 밥도 안 해줘서 내가 청소하고 밥 차려 주고 있어요. 필리핀에 돈도 보내줬는데 고마워하기는 커녕 날 더 무시한다니까요. 필리핀으로 보내버릴까 생각이 들어요.”


나는 바루다의 남편에게 “바루다의 태도가 맘같지 않아 기분이 많이 상한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먼저 입장을 바꿔 생각하시라, 거기서 바루다를 선택한 순간을 생각해 보시라,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니 기다리는 마음으로 대하시라. 딸같은 나이의 여성을 아내로 맞았는데 어찌 순탄하기만 하겠는가.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한 여성과 결혼했다면 어떠하겠는가, 거기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 많은 고비가 있을 것은 각오해야 한다.” 며 몇 번의 상담을 해 주었다. 그렇지만 스스로는 많이 노력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그는 참을성이 바닥 상태로 보여 걱정스러웠다.


한국말을 못하는 바루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마음을 열어보게 하였다. 남편과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바루다는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하였다. 수업에는 항상 누구보다 일찍 왔고 숙제도 열심히 했고 수업 참여도도 좋았다. 같이 공부하는 다른 필리핀 언니들로부터 위로도 받으며 나름대로 노력하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임신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바루다는 임신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19살 어린 소녀가 임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너무 적었다.


바루다에게 임신을 축하하며 주의를 주었다. 좋아하는 콜라, 과자, 라면, 커피, 아이스크림 등을 먹지 말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라고 하였다. 바루다는 수줍게 웃으며 그렇게 좋아하던 군것질을 멈추는데 힘을 쏟았다. 입덧 때문에 자연히 그런 음식은 안 먹게 된다는데, 바루다의 경우는 좀 달랐던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줄로 알았는데, 그녀가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한 친구의 말로는 전날 남편하고 싸웠다며 기분 나쁘다는 전화를 했다는데 아마 그 후 가출을 결정한 것 같았다. 남편에게는 물론 같이 공부하고 있던 필리핀 여성들에게도 연락이 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한국에 와 있는 이주여성들에게 우리는 일방적으로 한국에서의 삶에 적응하기를 기대한다. 바루다의 남편은, “그 나이가 뭐가 어려요. 알 거 다 알지.”하며 왜 빨리 한국말 배우고 살림을 할 생각을 안 하냐며 답답해 했다. 물론 한국 남성들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복(만족)만을 주장하지 말고, 아내의 행복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자신이 아내의 나라에 대해 배워볼 생각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가사를 분담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주 드물다. 이런 처지에서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상대적으로 강자인 한국인이 달라져야 서로가 행복할 수 있을 터인데….


어떤 이주여성과 결혼하건, 우리가 먼저 배려하는 공부를 하도록 한국인 남성들에게 호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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