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 문화의 발원지를 찾아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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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 문화의 발원지를 찾아서1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4.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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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윤덕 교무의 마음으로 만나는 유럽 이야기

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신의 부속품이라는 종교적 교의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대에 신 중심의 문화를 거역하고 인간 중심문화를 꽃 피운, 그래서 아름답지만 신께는 반란의 도시 피렌체를 찾을 때는 오전10시가 조금 넘었다.


로마 민박 집에서 일주일을 머무르며 로마 3일, 나폴리, 아씨시를 하루씩 섭렵하고 다시 레겐스부르크로 가는 길에 밤11시 기차를 타기 전까지 이 도시를 보고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피렌체(Firenze)는


라틴어로 ‘꽃’이라는 말


해질녘, 지는 해가 펼치는 춤사위가 멋지다는 미켈란젤로 공원에서 내려다 본 이 도시는 이름답게 물위에 떠있는 한 떨기 꽃이었으며, 도시 자체가 예술이고 또 그것들을 일궈낸 예술가들의 도시이다.


특히 르네상스의 발원지로 그 시대의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도시전체가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 같은 문화유산의 성지(聖地)이다.


돌이 말을 건네고 그림이 역사를 웅변 하는 도시, 신앙의 상징 성전이 수많은 이들의 피눈물을 먹었을지라도 그 권위를 잃지 않으려는 대범함이 살아 숨 쉬는 곳, 그래서 시간이 흐른 오늘날 그것들이 다시 믿음과 재화를 불러들이는 그곳이 나를 불러들인 것이다.


피렌체는 정말 세계를 놀라게 한 너무나 유명한 인물들의 고향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라는 3대 르네상스 대표 화가를 비롯해 보티첼리, 브루넬레스키, 단테(신곡), 마키아벨리(군주론)가 있고, 이 거장들을 지원하며 이 도시를 일군 메디치 가문을 빼 놓을 수 없다.


메디치 가문을 거론하는 이유는 금융업과 무역에서 성공하여 당대의 내놓으라는 큰 부자가 된 이 가문이 피렌체를 통치할 때 단지 예술을 사랑한 열정으로 수많은 돈을 들여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키워 냈기 때문이다. 돈으로 환산된 예술이 아니라 그 예술가들의 혼에 투자한 이 가문은 그들로 인해 더 명성을 얻게 되는 인과를 체득하였으며, 이 가문은 4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피우스 4세, 레오 11세)을 배출하며 이 도시를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해 오다 대가 끊길 때 그들 모든 유산을 토스카나대공국과 피렌체 시에 기증했다. 그리고 그 유물로 관광객들을 불러들여 오늘날 피렌체가 살아간다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메디치 가문은 당시 병자가 생기면 기도하고 안수 받고 끝났던 시기, 아닌 말로 푸닥거리 정도 할 때 그들은 약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로 보면 이단자요 교회의 불충자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신의 이름으로 돌려놓았다.




어떤 면에서 인류의 위대한 공도자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당대보다 훨씬 시간이 지난 다음 각광과 존경을 받기도 하고 비난과 욕을 먹기도 한다. 이 가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한번 다루기로하고 두오모성당으로 가 보자.


세계에서 4번째로 크고 아름다운 ‘꽃의 싼타 마리아 두오모성당’은 독특하다. 이탈리아는 성당 건물을 거의 두오모라고 한다. 영어와 독일어로는 돔 즉 지붕이 둥글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그 뜻이 아니다. 원래의 두오모는 교황이나 그 지역에서 최고 높은 주교의 앉는 위치를 말한다. 즉 주교좌라는 의미다.


건물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을 의미하며 그 아래에는 대부분 그곳에서 가장 위대한 성현을 안치한 무덤이 있어 그 위에 앉는 사람의 권위를 높여주는 것이다. 건축 기술이 발달하여 그 「주교좌」를 중심으로 해서 커다란 둥근 지붕을 얹어 놓았고 유럽에서 두오모(돔)는 반드시 쌍탑이다.


이태리 두오모의 특징은 고딕양식이라 할지라도 밝다. 그들 지역에 많이 생산된 대리석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인간을 억눌러 지배하려는 어둠의 그림자를 지워낸 밝은 풍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난한 자들의 성자라는 성 프란체스코가 잠든 아씨시성당과 로마의 많은 성당들도 독일의 어두운 성당과는 대조를 이뤄 고딕양식에 대한 새로운 눈이 떠지는 여행이기도 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원지로 천주교가 극도로 타락해가고 있을 때 사람들은 교황청의 부패로 신 중심보다 인간 중심으로 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사실은 인본주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미술 작품들이 인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다 보니 거의 나체로 그려지고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천주교의 가장 큰 타락 중 하나를 교황의 면죄부 판매였다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하고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그 교황이 바로 이 메디치 가문의 교황 레오 10세였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밤 열차가 새벽에 뮌헨에 도착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내렸는데 아뿔사 이번 여행 동안 찍은 사진 1200장이 들어 있는 카메라를 놓고 내렸네! 돌아와서 수소문을 했지만 이태리 기차에서 잃어버린 물건이 돌아온다는 것은 동정녀가 아이를 낳을 확률이라니! 세계적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이것이 이태리의 두 얼굴인가?


레겐스브르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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