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과 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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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과 공순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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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박제권 원로교무와 함께하는 정산종사 수필법문

한울안신문이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곤타원 박제권 원로교무가 수필한 정산종사법문 연재를 시작합니다. 곤타원 원로교무께서 정산종사로부터 직접 받든 법문들을 지면을 빌어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자료제공 서문성 교무)






언덕과 공순




정산종사 정전 시간에 말씀하시기를 속어에 ‘저 잘난 재미로 산다’ 혹은 ‘저 옳은 재미로 산다.’고 하였듯이 저 이외에는 무시하고 남을 둘러먹기로써 유일의 낙을 삼나니, 이것이 중생의 본능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수도인은 먼저 이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실(實)이 있어서 허망한 육신에 집착하여 남을 둘러먹고 무시하는가. 우리 집에서도 산업부원과 학생의 별(別)을 짓지 말라. 이것이 죄 짓고 악도를 부르는 중생의 심리이다. 공(空)한 진리를 관(觀)하여 평등관(平等觀)을 하라. 만약에 제석천왕이 하강(下降)하여 살펴본다면 우리 대중 중에 평등관으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할지 모르겠다.


방아실에서 일하는 동자가 육조대사(六祖大師)인 줄을 누가 알았으며 내소사 공양주가 부처인줄을 누가 알았으리요. 육도중생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하니 어느 때에 성불할 줄을 아느냐? 그러므로 말을 하더라도 항상 자비심으로서 언덕(言德)있게 하라.


부처님의 회상에 한 제자가 있었다. 법문을 들으러 오려면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강을 건네주는 사공을 부를 때에 ‘사공아’라고 부른 즉 사공이 듣기 곤란하였으나 직접 말은 할 수 없고 해서 부처님에게 그 제자의 말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들으시고 제자에게 “앞으로는 사공! 하고 부르고, 사공아! 라고 부르지 말라. 말은 먼저 언덕(言德) 있게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제자는 도리어 그 사공이 부처님에게 일러서 그리한다 하고 더욱 화가 치성하였다. 후에 부처님은 그 제자를 세 번이나 꾸짖고 법문을 하여 주셨다 한다.


작은 일부터 개량하여 큰일을 이루는 것이다. 동무들끼리도 서로 언덕 있게 하되, 저 동무의 허물을 내가 충고하고 나에게 충고하는 자가 있으면 합장하고 감사하라. 또 우자(愚者)가 배우러 오거든 공순(恭順)히 가르쳐 주라. 인과보응의 진리는 변복(變覆)될 때가 있으니, 목전지사(目前之事)만 보지 말고 나보다 못한 자는 가르쳐 주고 나보다 나은 자에게는 배우며, 말은 언덕 있게 하고 행동은 공순히 하라.


공자님도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이라’ 배움에 싫증을 내지 아니하고 가르침에 나태하지 않는다. 하시었으니 이 진리에 준하여 미래사를 관하여 남자는 여자를 존경하고 여자는 남자를 존경하며 교화하라. (원기31년 5월 24일)




정생희락지 이희묘락지




정산종사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생멸이 없는 자리를 알았다고는 하나 생멸이 있는 경계를 당하여 흔들리게 되어 섭섭하고 좋아하는 것은 정생(定生)이 못 된다. 죽을 자리에 와서 무서워하고 섭섭해 하고, 자비심을 발하려고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화담 서경덕 선생이 배를 탔을 때 흔들리지 아니한 것은 생(生)이 없는 자리에 내 마음을 적공 들여서 정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 정력을 키워 가는 데에 재미를 느껴야 한다. 이 정력의 힘과 재미를 얻어야만 무한동력이 이루어진다.


서산대사의 ‘만국도성 여의질(萬國都城如蟻?)이요, 천가호걸 약혜계(天家豪傑若醯鷄)라, 일창명월 청허침(一窓明月淸虛枕)하니 무한송풍 운부제(無限松風韻不祭)라’는 심경도 오직 이 진경을 맛본 분이기 때문이다. 어떠하든지 우리는 이 정력을 익히어 부처님의 권속이 되어간다는 재미를 느끼고 맛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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