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화와 해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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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화와 해원 1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4.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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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경식 교도의 신화 속의 종교 15

여러분은 무속신앙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선시대 유교(성리학)의 국교화와 더불어 초기부터 탄압을 받은 무당은 승려, 백정 등 팔천민(八賤民) 중 하나로 도성 출입도 금지될 만큼 천대를 받았습니다.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으로 이어지면서 그 나름의 통치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탄압을 받으니 미신타파가 불변의 행정지침이요, 교육명분이었습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새마을운동과 함께 또 다시 된서리를 맞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조선조 5백년에 다시 1백년을 보태면서 가지가지 수단으로 없애려고 애를 썼지만 무속은 건재합니다. 첨단과학이 지배하는 21세기 디지털강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도 무속은 번창 중입니다. 세습무(단골)는 사라지되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되는 강신무들은 날로 늘어난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게다가 불교는 물론 기독교 신앙 속에도 무속은 알게 모르게 똬리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 무속이 아니라 무교로 불러주세요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돌려보면 이상할 게 없습니다. 무속신앙(샤머니즘)은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정통 신앙이었습니다. ‘단군’부터가 무당을 뜻하는 말이요, 신라왕 이름에 붙은 ‘차차웅’(남해차차웅) 역시 무당을 뜻합니다.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고려의 팔관회 같은 것도 나라에서 베푼 굿이었습니다. 서슬퍼런 조선시대에도 왕가에서조차 정월이면 나라굿을 주선했고, 마을에선 대동굿이나 도당굿을 연례행사로 치렀습니다. 가정에서도 가장의 묵인 아래 부녀자들이 정월이나 시월에 안택굿을 하고 수시로 푸닥거리며 객귀물림을 하는 것이 우리네 풍속이었습니다. 그래도 무속신앙은 미신이 아니냐고요?


어느 나라든 토속신앙 치고 미신적 요소가 없는 게 있나요? 일본의 신도(神道)는 국교적 지위를 누리지만 무속보다 미신적 요소가 덜하지는 않더군요. 까놓고 말해서 불교나 기독교는 또 얼마나 미신적 요소가 많으냐고요! 교단 성립이 안돼 있고 체계적 교리나 경전이 갖추어지지 않은 데다가 어중이떠중이 돈벌이 나선 사이비 무당들이 많다 보니 신뢰도가 낮은 것도 사실이지요. 이른바 고등종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기는 하지만 무속신앙도 종교 대접을 해줘야 맞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엔 ‘무속’이 아니라 ‘무교’(巫敎)라고 부르는 추세입니다.


어차피 모든 종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게 마련이고, 불교나 기독교가 그렇듯 무교 역시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무속이니, 무교니 하지만 여기에는 대단히 다양한 측면이 있어서 간단히 재단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이 무교에 빚진 것도 많습니다.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연희 등 문화예술 전반에 끼친 공덕은 그렇다 치고 정신문화에서도 그 은혜는 엄청 큽니다.


그 중에도 공동체의식을 키워준 수평적 사회통합이나 조상과 자손을 묶어준 수직적 혈연통합에 기여한 바는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또 하나는 정서적 안정과 위로이겠는데 그 중에도 원한을 풀어주고 한을 승화시키는 해원(解寃)의 기능이 주목할 바라고 하겠습니다.




#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이게 성주풀이라는 굿노래, 무가인데 더 많이는 민요로 불립니다. 영웅호걸과 절세가인, 그들은 아무리 원한이 남았다고 해도 한때는 잘나가던 사람들이니 그나마 위안이 되겠지만, 이름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야 막상 죽음에 이르러 어찌 남은 한이 없겠습니까. 인생이 소중한 것이라 한다면 왕후장상의 경륜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미천한 범부중생의 원망(願望)도 나름대로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지만, 수명장수하고 자손창성하고 부귀공명을 누리다가 고종명(考終命)하는 것까지야 아니더라도 억울한 죽음, 한 많은 죽음이라면 편안하게 저승으로 가겠습니까? 그러니까 중음신으로 허공에 떠돌며 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기도 한답니다.


산에 올라 호랑 영산/거리 노변에 객사 영산/약을 먹고 죽은 영산/목을 매어 죽은 영산/물에 빠져 수사 영산/총에 맞아 죽은 영산/포탄 맞아 죽은 영산/칼에 찔려 죽은 영산/말에 떨어져 죽은 영산/소에 받혀 죽은 영산/기차 자동차에 깔려 죽은 영산/다리에 떨어져 죽은 영산/기계사고 죽은 영산/산사 길에 가신 영산/추야장 긴긴밤에 임 그리던 상사 영산/엄동설한 모진 추위 얼어 죽고 굶어 죽은 영산/일락서산 사발 들고 거적자리 옆에 끼고 청치마 휘어잡고 불에 화탈 신에 화탈도 영산이요… (뒤영산 풀이)


여기서 영산이란 정상적으로 죽지 못하여 원한이 맺힌 영산귀를 말합니다만, 어쨌건 우리도 죽으면 원과 한이 맺힌 영산귀가 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일산교당, 서울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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