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네 소풍에는 바람 잘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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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소풍에는 바람 잘날 없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6.26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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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성하 교무의 미국교화 이야기

요사이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고 있습니다. 오늘 와이오밍주는 콜로라도보다 바람이 한수 위인 듯합니다. 바람이 심할수록 차 위에 묶어 놓은 짐들이 마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는 듯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몇 시간만 더 버텨줘라’하면서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서 쉴 때마다 다시 묶은 매듭들을 점검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기름을 넣으려고 들린 주유소는 서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셉니다. 차 위에 묶어 놓은 짐들을 확인해보니 반쯤 뒤로 밀려 있습니다.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혹시라도 짐덩어리가 프리웨이에 떨어지면 안되니 다시 묶어야 합니다.


줄을 다 푼 후 간사와 차 위로 올라가 씨름을 하는데 옆에서 기름을 넣으려고 차를 세운 후 우리를 지켜보는 미국 아저씨의 표정이 복잡합니다. 한눈에 보아도 ‘이런 날씨에 그냥 집에 있지, 왜 나왔어?’하는 표정입니다. 보아하니 고만 고만한 애들이 줄줄이 넷인데 어른 남자는 한 명도 없고 동양 여자 둘이 왠 검정 보따리를 차 위에 실어 놓고 밧줄을 가지고 위로 던졌다가 아래로 묶었다가 하니 심난스러운가 봅니다.


걱정마시라는 표정으로 한번 씩 웃어주고는 짐을 다시 꽁꽁 묶습니다. 검정 쓰레기 포대에는 침낭과 텐트, 그리고 텐트 아래 깔려고 준비한 요가 매트가 들어 있습니다. 교당 소풍을 가는 중입니다. 여차 저차 하여 이번 소풍은 1박 2일 캠핑이 되었고, 그것도 머나먼 와이오밍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교무는 그곳을 잘 모르고 가본 적이 없어서 선발대로 교도님들 보다 하루 먼저 출발하여 자리를 잡아 놓기로 하였는데 때마침 꼬마 인연들이 생겨서 초대를 하다보니 만석이 되어 차 위로 한 짐이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검정 쓰레기 포대를 뒤집어 씌워 짐을 두개 올리고 흰색 밧줄로 여기 저기를 묶고, 밧줄과 포대가 움직이지 않도록 그 위에 청테이프로 붙이고 나니 금지옥엽 같이 아끼던 교당의 미니밴은 간 곳이 없습니다.


트렁크 위 창문으로 보이는 보따리들과 후라이팬, 얘기를 업고 있는 교당 손님과 코흘리개 셋, 바람에 머리가 쑥대밭이 된 교무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는 우리 간사 그리고 궁상끼가 졸졸 흐르는 미니밴이 합쳐져 우리는 꼭 야반도주하는 흥부네 가족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즐거운 소풍을 가는 것입니다. 날씨가 이리 협조를 안하는 것은 교무의 법력이 모자라 호풍환우를 못하는 탓이니 누굴 원망할 것도 없고, 그저 머리 위의 짐이 프리웨이에서 떨어지지만 않는 것에 감사하며 캠핑장에 도착했습니다.


맞은 편에는 산이 한자락 그림처럼 깔리고 그 아래로는 멋진 호수가 펼쳐져 있고 주변에는 사슴들이 여기 저기 뛰노는 들판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멀리서 보면 근사한 광경이지만 우리 눈은 아름다운 전경에 가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텐트에 꽂혀 있습니다. 밥 먹는 사이에 날아가면 곤란합니다.


게다가 밥은 백 미터 달리기를 하면서 한술씩 뜨고 있습니다. 젓가락을 내려 놓으면 젓가락이 날아가서 집어오느라, 무심코 밥을 한술 떴는데 먹던 일회용 접시가 날아가서 집어 오느라, 물을 다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가 날아가는 컵을 가져 오느라 ….


바람에 비벼 저녁 한술을 뜨고 텐트에 누우니 이번엔 비닐로 된 텐트 바닥이 어찌나 펄럭여대는지 시끄러워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이 바닥은 이럴지언정 저 하늘은 딴 세상입니다. 고요한 하늘에 별이 촘촘합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울 터이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교무는 괴롭습니다. 모두들 소풍와서 바람에 등만 떠밀리다 갈까 걱정스러울 밖에요. 그러나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기를 기대하면서 속좋게 별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싸구려 텐트에 누워 교무 혼자 외칩니다. 나여, 힘내라!


콜로라도 덴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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