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법신불사은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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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법신불사은님11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7.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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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현성 교도와 함께하는 정전공부 26

대종경 교의품에는 어떤 사람이 대종사님께 법당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일원상을 모셨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원불교의 스승[본사(本師)]으로 모신다는 것은 말뿐이고, 특별히 숭배하는 행사는 없지 아니한가를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대종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법당에 불상을 모시지는 아니하였으나, 일반 신자들에게 부처님을 지극히 존숭하도록 신심을 인도하는 동시에 참다운 숭배는 부처님의 말씀하신 근본정신을 존중히 받들고 또한 육근을 작용할 때에 그대로 행을 닦아서 부처님의 법통과 사업을 영원히 계승 발전시킴에 있다는 뜻을 역설하는 바인즉, 어찌 불상을 모시고 조석 예불하는 것만을 숭배라 하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교의품 9장) 우리는 대종사님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바치신 신성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통과 사업을 우리 교단을 통해 영원히 계승하여 발전시키신 대종사님에 대해서 정산 종사님께서는 제자로서 스승께서 밝히신 교법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과거에 모든 부처님이 많이 지나가셨으나 우리 대종사의 교법처럼 원만한 교법은 전무후무하나니, 그 첫째는 일원상을 진리의 근원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일체를 이 일원에 통합하여 신앙과 수행에 직접 활용케 하여 주셨음이요, 둘째는 사은의 큰 윤리를 밝히시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윤리뿐 아니라 천지 부모 동포 법률과 우리 사이의 윤리 인연을 원만하게 통달시켜 주셨음이요, 셋째는 이적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인도상 요법으로 주체를 삼아 진리와 사실에 맞은 원만한 대도로써 대중을 제도하는 참다운 법을 삼아 주셨음이라, 아직도 대종사를 참으로 아는 이가 많지 않으나 앞으로 세상이 발달하면 할수록 대종사께서 새 주세불이심을 세상이 고루 인증하게 되리라.”(법어 기연편 11장)


백양사에서 다시 뵙게 된 대종사님


십 년 전 “대장경 속의 파니니 문법 연구”를 인연으로 하여 백양사의 방장으로 계셨던 서옹 스님을 여섯 명의 국어학자들 속에서 함께 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옹 스님은 일찍이 70년대 중반 조계종의 종정을 지내셨고, 백양사 고불총림의 방장으로 주석하시면서 당시 무차선회를 개최하시는 데에 모든 원력을 집중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날 아침에 한 시간 정도 국어학자들과 서옹 스님과의 대담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마침 그 자리의 사회를 제가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 면면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백양사를 방문하게 된 연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서옹 스님께 한 말씀씩을 드리고 나서 사회자인 제가 스님께 불경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주실 것을 청하자 스님은 맑은 눈빛으로 참석자들을 둘러보시더니 뜻밖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툭 던지시는 것이었습니다. “원불교의 소태산 대종사는 참 위대한 성자이시다. 근래에 많은 종교가 한국에 새로이 출현하였으나 원불교만큼 성공한 종교는 없다.”라고 원불교와 대종사님을 크게 드러내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 의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원불교 교도는 저밖에 없었고 제가 원불교 교도라는 것은 참석한 국어학자들만 아는 정도였는데 서옹 스님은 왜 밑도 끝도 없이 원불교와 대종사님을 언급하셨는지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백양사를 특별히 방문한 국어학자들을 위해 그 날 저녁 백양사 주지 스님은 절 아래 식당에서 만찬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주지 스님께서는 오전의 서옹 스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의 요지는 “원불교는 아직 종교로서의 체계를 못 갖추었고, 원불교의 성직자는 돼먹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다시 한번 속으로 “왜 저분이 저런 말씀을 하실까?. 저분의 맺힌 마음과 오해를 어떻게 풀어드려야 할까? 그 주지 스님의 말씀은 그날 자리를 파하고 나서도 제 귓전을 맴돌며 제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왔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


그로부터 이삼 년이 훌쩍 지난 어느 해 추운 겨울, 그 때의 국어학자들은 다시 백양사에 딸린 작은 암자(문성암)를 빌려서 하루 저녁 세미나 겸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암자의 주지 스님으로부터 서옹 스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일행들은 부랴부랴 짐을 꾸렸고, 문상을 위해 백양사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시자 스님의 호의로 우리 일행은 좌탈입망으로 입적하신 스님을 그 방에서 직접 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자 스님의 권유로 이미 차가워진 스님의 손도 잡아드렸습니다. 저는 서옹 스님의 손을 잡은 채 잠시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스님, 천상이 좋다고 그곳에 너무 오래 계시지 마시고 곧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새 회상에서 우리 함께 부처님 사업을 하셔야죠.”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몇 해 후 대각개교절 날, 돈암교당은 대각개교절 행사의 하나로 ‘이웃 종교인 초청 강연’의 연사로 그 때의 백양사 주지 스님을 모시기로 공의를 모았습니다. 스님과의 연락은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님께 모시려고 하는 취지를 간곡하게 적은 편지와 우리 교전을 먼저 보내드린 후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대각개교절에 돈암교당을 방문하시어 법문 한 말씀을 하시도록 청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원불교 교전을 읽어 보았노라고, 원불교가 이렇게 발전한 종교인지 미처 몰랐노라고 흔쾌히 승낙을 하셨습니다. 이전에 미처 몰라서 그렇게 폄하하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오래전의 과한 말씀에 대해 사과까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해의 돈암교당 대각개교절은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그 스님은 원불교 교전을 몇 번을 읽어 보셨는지 우리 대종사님과 교법과 교단에 대한 느낌과 감회를 법당을 가득 메운 교도님들 앞에서 가득 펼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대산 종사께서는 “대종사님께서는 영겁에 죽어 가는 이 마음을 살려 주셨고, 영겁에 병든 마음을 고쳐 주셨기 때문에 부모은 가운데 대종사님 은혜가 크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대종사님은 일체 생령의 부모이시고, 법부(法父)이시고, 심부(心父=靈父)이시고, 은부(恩父)이시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대산3집 1편 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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