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법신불사은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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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법신불사은님 12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7.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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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현성 교도와 함께하는 정전공부 27

영혼의 부모이신 스승의 은혜에 보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승님들께서 밝혀 주신 경전과 법을 소중히 받들어야 합니다. 스승님들께서 밝혀 주신 법에 의지한 삶을 살 때 비로소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타원 종사께서는 스승의 법대로 사는 삶, 그것이 바로 법력이라 하셨습니다. 이 생에 만나 육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도 지중하지만 우리 영혼의 빛을 일깨워 주신 스승님들을 찾고 그 분을 닮아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산 종사께서는 “이 회상 만났을 때 부지런히 공부하여 성불(成佛)하고 좋은 인연 맺어 놓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양시대에 나오신 불성(佛聖)들은 회상을 펴시고도 십분의 이나 삼 정도 나타내고 가시므로 우리가 그 깊은 뜻을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들의 작은 소견으로 계교하는 것은 마치 두 발로 걸어가는 사람이 날아가는 비행기 속도를 측량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 “성현을 삼세(三世) 정도는 모셔야 법 받는다.”고 하신 대종사님의 말씀을 인거하시면서 스승이나 회상에 대하여 변심하는 수가 많은데 스승에게 오롯이 신성(信誠)을 바친 구정 선사의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생 업장(業障)이 두터운 사람은 이 쪽에서 손길을 뻗어 주어도 자기 재주나 고집으로 웃스승의 손길을 받지 않고 계교하다 넘어진다.”고 하셨습니다.(대산3집 1편 27장)


만일 대종사님께서 안 계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 있는 진리를 알 수 있었으며, 마음을 닦아 부처되는 길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이 육신을 낳아 주신 부모님의 은혜가 지중하다 해도 부모님은 한 생만의 부모님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원한 생이 있음을 깨우쳐 주신 대종사님은 영생의 부모님으로 그 은혜가 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승이나 회상에 변심하는 배은의 삶을 살면 부모의 은혜에 배은하는 것이 되어 우리의 영생을 그르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대종사님께서 깨우쳐 주신 이 법과 가르침을 그대로 받들어 실천한다면 바로 부모 은혜에 보은하는 생활이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은 점점 참되고, 진급이 되어 법신불 진리가 우리를 영원히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크신 스승님들께 인연 거는 바른 법


예타원 종사께서는 법문집 ‘생사대도’에서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과 삼대력을 갖춘 큰 도인에게 인연을 심고 친근하여 법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미로에 빠져 허덕일 때 빛을 밝혀 주고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바른 삶에 뜻을 세운 수도자는 인연을 소중히 하고, 바른 법과 바른 스승 찾기에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법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당을 다니면서 여러 교무님들을 뵈었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예타원 종사님의 ‘참회’와 ‘기도’ 두 권의 법문을 받들고서 비로소 대종사님을 영부로서 모실 수 있는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예타원 종사님께 ‘저는 유년회 때부터 교당을 다녔고, 학생회 때는 5년간 총부 수련회를 빼지 않고 다니면서 여러 차례 대산 종사님을 뵈올 수 있었지만 그 어른과의 인연이 짧아서였는지 알아 뵙지 못해서, 깊은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찌하면 다음 생에라도 이 어른과 인연을 깊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쭈었더니 ‘대산 종사님의 법문집을 많이 읽어 보아라. 그러면 그 어른과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두터워지는 법이다.’라고 일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 날 때마다 기회 닿는 대로 대산 종사님의 법문을 읽으려고 애를 쓰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산 종사님의 법문을 읽어가는 데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 어른께서 이렇게 인류 구원의 원력으로 세계 사업을 하시면서 성자의 길을 걸어가셨구나!”하는 마음이 들면서 대종사님과 정산 종사님을 다시 한번 간절히 마음으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칼럼을 준비하며 읽게 되는 정산 종사님과 대산 종사님의 법문 구절구절에 가슴이 더욱 뭉클해지고 흠모의 마음이 커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재가로서 대종사님께 올리는 보은행


스승이 있어야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능히 큰 도를 이룰 수 있으며, 줄 맞는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부처님과 모든 선지식을 스승으로 받들어 믿고, 그 스승들이 전하신바 경전의 법을 체 받아 부지런히 마음을 살피고 닦는 데에는 출가와 재가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예타원 종사께서는 ‘생사대도’에서 “원불교 교무의 부임은 종법사의 명을 받아 종법사의 대행자로 그 지방 주법자가 되고, 교도의 스승으로 가는 것이기에 사명이 중대하고 책임이 참으로 크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평소 ‘우리 교단의 교무님 한 분은 다른 종교의 성직자 100분과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농담처럼 주변에 말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 교단의 교무님들은 다른 노대 종교의 성직자들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다른 노대 종교의 성직자들께서는 그 커다란 교세로 인해 성직자로 좋은 대접(?)을 받으시지만 우리 교무님들은 세속인의 눈으로 봤을 때 그저 가난하고 궁핍한 수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교무님들께서는 교도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염원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재가와 출가가 함께 성공하고, 공부와 사업을 함께 이룰 것을 염원하면서 기도하시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메마른 정신에 법열을 솟아오르게 해 줄 것인가를 간구(懇求)하면서 기도하시는 분들입니다. 영성으로 따지면 어느 종교의 성직자들보다 더욱 위대한 분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100년도 안된 원불교가 오늘처럼 한국에서 4대 종교의 하나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무연지 교화 현장에 부임하신 교무님들께서 한 생을 오롯이 바쳐 올리신 혈심과 혈성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교무님들처럼 대종사님 법을 남 먼저 알아보시고 출가하셔서 이 법을 위해 교화의 현장에서 위법망구(爲法忘軀), 위법망사(爲法忘私)의 삶을 사시는 활불(活佛)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의 교단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교무님들을 우리가 받들어 드리는 것이 바로 영부이신 대종사님의 은혜에 재가로서 보은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돈암교당/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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