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살아 숨 쉬는 뷔르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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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살아 숨 쉬는 뷔르츠부르크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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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윤덕 교무의 마음으로 만나는 유럽 이야기

낭만의 거리라는 로만틱가도가 시작되는 아담한 도시 뷔르츠부르크. 백조의 성으로 유명한 퓌센까지 360km이어진 이 도로는 중세에 성지순례 길과 무역로 역할을 했기에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정말 낭만의 거리다. 거기에 마음 맞는 도반이나 동반자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얼마나 더 어울리겠는가?


역에서 내려 30여분 시가를 가로지르다 바람에 얹힌 강내음이 코를 간지럼 필 때 나는 알터마인교란 다리 위에 도착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를 지나 흐르는 마인강 위로 놓여진 이 다리는 이곳에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키리안을 비롯한 열두분의 뷔르츠부르크 수호성인상이 놓여 있다. 그 분들 중 일부는 순교를 당하기도 했지만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진 이방의 종교 기독교는 741년 보니파키우스에 의해 주교관구가 된 후 번성하여 현재 13만5천여명이 사는 도시에 48개의 교회로 자리 잡고 안방 주인이 되어있다.


따뜻한 햇살에 전신을 맡기며 그 동상 사이를 오가며 나는 이들 중 한분이 전생의 나였을까? 나도 이방의 종교 원불교를 독일 땅에 뿌리내려 이런 분들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상념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마리엔부르크라는 언덕 위의 웅장한 요새 성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원전 1000년부터 인가 독일 게르만 부족중의 하나인 켈트인의 요새였던 이 도시. 독일의 심장부에 위치해 교통의 요지인 뷔르츠부르크는 프랑켄 지방의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종교개혁의 열풍에도 끝까지 가톨릭을 고수한 이곳은 집집마다 현관에 성인들의 초상을 모시고 있어 마리아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나를 압도한 산 위에 우뚝한 마리엔베르크 요새는 기원전 1000년 켈텐족의 요새였다가, 1200년 전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고성(古城)이 되었다. 이 요새 안에는 706년 세워진 원형교회가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중 하나이지만 원래 이 교회는 켈텐족들이 자신들의 신을 모시고 예배드린 장소였다. 종교도 이처럼 자신들의 고유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다른 신을 섬겨야하는 변화가 있는 것이구나 여기며 가슴이 메여왔다.


이 성의 옛 이름은 뷔르츠부르크 요새이며, 1253-1719에는 주교의 주거지로 쓰였으며 잦은 침략이나, 당시 영주였던 주교들의 폭압과 소작인에 대한 착취 때문에 1400년 농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수만명의 농민군이 죽는 봉기가 잦았다. 그 과정에서 성은 더욱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이게 되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군림하는 권력자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성벽은 가로 놓인 듯하다.


농민의 저항의 함성이 멈춘 후 이 성은 1600년대에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재건되었고 고립된 성안의 식수를 해결한 우물사원에는 깊이가 104m나 되는 우물이 있다. 필자는 이 우물을 파 내려갈 동안의 그 인내와 신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세기,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의 정복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어 영주의 정원으로 이용된 것이 오늘의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다. 마리엔언덕의 성에서 내려다보는 시내는 참으로 아름답다. 도시 주변 사방 또 다른 언덕은 예로부터 유명한 와인의 산지다. 주머니처럼 생긴 독특한 병모양의 프랑켄 와인의 주산지며, 서리에 언 포도를 이용해 담그는 리슬링이 이곳의 자랑이다.


또한 뷔르츠부르크 종합대학교가 있어 도시는 젊은이들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중세에 건축한 구시가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을 뽐낸다. 이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198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주교의 궁전으로 불리는 레지던츠로 향해보자.


어느 시대건 권력자가 웅대한 건물을 짓는다면 주민들의 부역과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다. 그래서 원성도 많은 것이다. 이곳 레지던츠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주교의 궁전으로 위용은 실로 대단하다. 특히 중세풍의 고압적이고 투박한 다른 건축물들과는 달리 우아한 바로크풍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조차도 이곳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며, 하루 밤을 보낸 그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제관” 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도시의 명소 1번으로 자랑되는 레지던츠는 오늘날에도, 건축가 빌타자르 노이만의 기둥없는 특수공법이 특이하여 건축계에서는 격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이만은 독일이 마르크화를 쓰던 때 50마르크 지폐에 얼굴이 새겨졌을 정도로 대표적인 건축가다.


독일 4대 로만틱 양식의 교회이자 11세기와 12세기의 독일 건축 예술의 정수로 손꼽히는 성 킬리안 성당(St. Kilian Dom)은 반드시 들려 보시라 추천하고픈 곳이다. 이곳을 보셨다면 노이뮌스터 교회 (Neumuenster Kirche)를 들러 보시라.


바로크식 외관과 인테리어를 갖춘 거대한 8각형의 성당. 이곳에서는 매년 7월 7일 연례행사가 개최되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수 천 명의 순례객들이 찾아와 689년 이곳에서 순교당한 3명의 선교사 (Kilian. Kolonat. Totnan)를 기리는 예배가 진행된다. 순교자를 기리는 교회와 그들을 잊지 않고 1319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도 찾아오는 그들의 신앙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8월24일부터 9월7일까지 독일인교도 21명이 성지순례와 한국문화체험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원기 100년 행사에 100명의 교도가 성지를 순례하자고 다짐하고 있는데 하면서 작은 미소를 보내며 마음속 가득 세분 순교자를 위한 성주를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도시 가득 낭만이 숨쉬는 곳이 뷔르츠부르크다.




레겐스부르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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