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에도 신화가 있나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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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에도 신화가 있나요 2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08.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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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경식 교도의 신화 속의 종교

여래위에 오른 부처님에겐 여섯 가지 신통을 부리는 재주가 있다 합니다. 보통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천안통, 보통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 천이통, 남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는 타심통, 자기와 남의 전생을 아는 숙명통,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신족통, 자유자재로 번뇌를 끊어버리는 누진통 들이 그겁니다. 과학의 힘은 망원경과 현미경을 통해 천안통을, 통신기기를 통해 천이통을, 항공기 등을 통해 신족통을 이미 달성했으니 이제 와서는 신통이랄 것도 없습니다. 타심통과 숙명통은 좀 힘이야 들겠지만 불가사의할 것까지는 없고, 다만 누진통만은 함부로 입에 올릴 처지가 아니로군요.




#신화를 가지고 놀게 합시다


그렇긴 해도 공상과학 영화나 컴퓨터 게임 등을 보십시오. 컴퓨터 그래픽이 보여주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사이버 세계는 도무지 불가능을 모르는 상상력의 자유를 누립니다. 어쩌면 요즈음 청소년에겐 삼명 육통 그딴 것을 얻으려고 히말라야에서 6년 고행을 한 석가모니나 20년 수도한 소태산이 딱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초자연적 세계를 미신이라고 꺼리기보다는 그저 재미있으면 오케이라는 요즘 애들을 받아들입시다. 원불교 신화를 가지고 놀게 하자구요. 그 속에서 신심과 공부심을 얻게 하는 기연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잖아요? 분석해 보면 유형이 몇 가지 있는데 맛보기로 들어보세요.


① 11살 진섭(소태산)이 삼밭재에서 기도하다가 마당바위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 추위에 잠든 진섭이 포근한 느낌이 있어 눈을 떠보면 호랑이가 와서 감싸 주고 있었다. 진섭이 잠에서 깨면 호랑이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곤 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지, 호랑이 볼 수 있는 곳은 동물원뿐인데 처음부터 얘기가 안 되잖아? 하는 의문을 가질 만합니다. 그러나 1917년 이후 10여년에 걸쳐 일제 총독부의 허가를 받은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소태산이 삼밭재에서 기도하던 1901~1905년경에는 호랑이가 ‘개 끓듯’ 했다? 이 말은 좀 부풀려졌는지 모르지만 거짓이 아닙니다. 그리고 고양이과 동물은 사람과 친화적인 영물 아니겠습니까.


② 원기23년 정초, 대종사는 총부에서 동선중인 황정신행에게 기차표까지 사다주며 서울로 가라고 지시했다. 새벽에 경성역에 내려 택시로 귀가하는 길에 보니, 세상에! 자기 포목점 순천상회가 활활 불에 타고 있었다.


초인에게는 범인이 가늠하지 못하는 예지능력이 있습니다. 앞을 내다보는 영감은 범인에게는 어쩌다 있지만, 초인에게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사람의 왕래와 생사 같은 것도 귀신같이 알아맞히지요. 이건 대개 진짜일 겁니다.




#미화도 있을 거고 과장도 있겠지요


③ 대종사가 금산사에 머물 때, 한 신도가 실신하자 죽은 것으로 알고 대중이 우왕좌왕했다. 대종사가 다가가 이마에 열십자 긋고 잠깐 묵념하니까 살아났다.


죽은 사람 살렸다고 알려져 김제경찰서에 끌려가 일주일 구류 먹었다죠? 배 아파 죽게 생긴 소년의 배에 호박잎을 붙여 살렸다든가, 대종사가 잡숫던 간장 한 종지를 마시고 만성 인후증을 말끔히 고쳤다든가, 아무튼 대종사 덕분에 병 고친 사연은 엄청 많습니다. 아마 플레시보(위약) 효과가 있었을 것이고, 미화와 과장에다 더러는 왜곡도 생겨났을 것입니다.


④ 팔산과 일산이 스승 모시고 변산 가던 길에, 날은 저무는데 배가 없었다. 대종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발꿈치만 딛고 따라 오너라” 하고 바닷물 속으로 한발 내딛자 신작로가 훤히 생겨났다. 두 사람은 옆도 보지 않고 스승의 발자국만 딛고 따라가노라니 대종사는 축지법을 써서 금방 곰소항에 도착했다.


이런 이야기도 제법 여러 개 있습니다. 예수는 겨우 호수(갈릴리) 물 위를 걸었다지만 대종사는 바다를 가르고 다녔습니다. 호숫물과 바닷물은 게임이 안 되죠. 게다가 축지법까지 썼다니 예수보다는 윗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구? 그냥 대종사의 위대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죠.


⑤ 대종사가 곰소항에서 소복한 미인의 방문을 받았다. 법성포에서 음식점 하던 나씨 마누라인데 여러 남자를 꾀어 신세를 망쳤던 여자다. 그녀는 죽어서 업보로 큰 구렁이가 되었는데 울며 천도를 애원하매 대종사가 제도해주었다.


대종사의 초기 설법을 보면 인과설화가 꽤 있습니다. 팩트를 빙자하지만 거의가 방편 설화입니다. 인과를 믿고 업보를 두려워하라는 말씀이지요. 교훈적 방편과 은유도 많지요. 원불교 신화, 그 초자연성을 팩트라고 주장하면 남들에게 맹신자로 비쳐질 수도 있으니 우리가 거기에 목맬 건 없지요. 믿고 싶으면 믿고 싫으면 말라죠. 아무렇게나 해도 주세불의 정체성이나 대도정법의 정당성이 훼손될 일은 없으니까요.


일산교당 / 서울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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