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부터 배우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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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부터 배우는 가르침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10.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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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정탁 교수의 세상읽기

오늘은 제 자식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잘못하면 자식 자랑으로 들릴까 싶어 조심스럽게 글로 옮기겠습니다만 그래도 자랑으로 들린다면 제가 수양이 한참 부족한 탓이라고 널리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제 아들과 지난 1년 간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지난 여름 제 아들이 런던에 가서 영국에서 가장 큰 시중은행인 RBS(Royal bank of Scottland)에서 인턴 생활을 했는데 긴장은 여기서부터 발생했습니다. 2개월간 인턴 생활을 마치면서 제 아들은 은행 측으로부터 인턴 자리를 다시 제의받았습니다. 이 제의는 대학 졸업 후 인턴 제의이기에 사실상의 채용을 의미합니다.


아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저와 제 안사람은 마냥 꿈에 부풀었습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은행 본점에 근무할 아들을 그려 보면 부모로선 당연히 신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국제금융을 아는 제 친구 하나는 어떻게 영국 은행, 그것도 런던 본사에 입사할 수 있었느냐고 의아해 했습니다. 보수적인 영국 금융계에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면서….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집으로 오는 길에 아들로부터 예상 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채용 제의를 받았지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더니 제 아들은 봉급을 많이 받으려면 투자은행(investing banking) 분야로 진출해야 하지만 자기가 볼 때 투자은행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로도 거품이 끼어 있는데 앞으로는 그 거품이 더 많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거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한 노력들이 헛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학을 전공한 저로선 이런 말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뒷바라지한 부모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미래를 독단적으로 정하는 아들에 대해 서운한 감정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서운함은 아들과의 대화 단절로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제 아들은 군대에 가야한다면서 휴학을 결정했습니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었기에 그런 결정이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미국서 직장을 얻으려면 미국 대학에 적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댔지만 부모 생각은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가는 편이 나을 텐 데라는 상식선에서만 맴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컸다고 부모 말도 듣지 않는구나 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저와 제 안사람은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제 아들은 예정대로 지난 7월 초 해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혹시나 훈련 중 탈락하면 어찌할까 하고 노심초사 했지만 다행히 훈련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1천 2백여 명 정도가 훈련소에 입소했는데 8백 명만 남고 나머지 4백여 명은 중도에 탈락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여름의 찜통더위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체중이 첫 4주에는 10킬로, 나중 4주에는 5킬로나 빠졌다고 하니까 정말로 힘든 훈련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훈련소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탓인지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영어 실습을 도와주는 어학병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가 군함을 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어학병으로 가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제 아들은 거꾸로 남들이 고생한다고 가기 싫어하는 군함을 타려고 하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제 아들은 고생하기 위해 군대에 왔으니까 제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건조된 구축함을 타게 되었는데 지금 이 배는 대통령을 태우고 부산 앞 바다에서 전 세계 80개국에서 온 군함들을 시찰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 이 배에 배치되자마자 대통령이 타게 되었으니 지난 한 달 간 훈련받느라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요. 밧줄을 잡아당기느라 손 안쪽이 부르트는 등 힘든 생활은 하면서도 그래도 견딜만하다는 아들의 전화 목소리에 안심은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자식이 고생을 자처한 셈이지요.




그런데 지난번 면회를 갔을 때 제 아들 판단이 결코 그른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부함장이 직접 제 가족을 안내하면서 요즘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훌륭한 젊은이라고 제 아들을 추겨 세우면서 과분한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또 면회를 하고 난 며칠 뒤에는 원사(육군으로는 특무상사)인 분이 제게 전화를 해서 자식을 잘 키웠다고 칭찬하면서 혹시 자식하고 통화하길 원하면 자신의 핸드폰으로 연락하라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병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분으로부터 예상치 않은 친절이었습니다.


이런 친절을 경험하면서 인생에는 모범답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고생한다고 피하는 길을 선택해도 얼마든지 잘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제 아들의 군대생활을 통해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 요즘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전해 오는 우울한 뉴스를 들으면서 제 아들이 투자은행을 선택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스레 느끼고 있습니다. 그 분야로 진출 했더라면 벌써 구조조정 대상이 되었을는지도 모르니까요. 전문가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데 아들의 판단이라고 무조건 무시했던 것이지요. 이 분야 사리연구에 있어서는 제 아들이 저보다 앞서 있는데도 이런 전문가 식견을 무시했으니 아들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제 아들은 군대 가기 나흘 전 GMAT 시험(미국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보아야 하는 시험)을 보았습니다. 남들은 군대 간다고 자포자기식으로 놀 때 해야 할 일을 마치고서 군대에 갔습니다. 다행이 점수도 좋게 나와 8백점 만점에 7백40점을 받았습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합격자 평균이 7백점 정도라고 하니까 높은 점수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학원 진학이 옳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 아들놈은 몸은 고될는지 모르지만 마음은 홀가분한 상태로 군대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아들 판단을 항상 못미더워했으니 저도 이젠 낡은세대에 속하는 가 봅니다.


원남교당 /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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