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고백, 다짐
상태바
반성과 고백, 다짐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10.30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최서연 교무의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 센터에서는 지난 4월부터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연극치료 프로그램을 해왔다. 처음에 연극치료연구회에서 프로그램을 들고 왔을 때, 이주여성들에게 참 유익할 것으로 믿고 이주여성들에게 묻지도 않은 채, 별 고민 없이 냉큼 받아 들였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이주여성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고 이번에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모두 열심히 출석하라’고 강조하고는 자부심으로 충만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의지나 기대와는 달리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출석수가 반으로 줄었다. 정원 20명 중 열심히 오는 사람이 반 정도이고, 나머지 반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석을 하더니 아예 발길을 끊어 버리고 한국어 수업도 중단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진심을 몰라주고,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좋은지를 모르고 안 오는 이주여성들이 한심하다 하고 고마움을 모른다고 판단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 자리를 펴 놓았을 때 고맙게 참석해야 할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는 중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들과의 상담과 그만 둔 사람들과 전화로 조금씩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되었다.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도 재미는 조금 있지만 배우는 것이 없다면서 끝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만 둔 사람들은 재미가 없어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수업도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말은 많고, 한국어 배우러 왔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속사정을 알았지만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제대로 마칠 수 있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잘못하였다는 것을 법신불 사은전에 고하고 고하며 우리 자체의 프로그램이라면 모를까 정부의 지원을 받은 다른 단체의 프로그램을 중도에 접게 할 수는 없으니 그저 한 번 봐 주십사 하며 기도했다.


다행히도 남은 사람들과 나중에 새로 등록한 이주여성들이 잘 협조해 주어서 연극발표회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연극발표회를 한다고 하니까 뭐가 뭔지 모르고 따라만 하던 분들도 이번에는 감을 잡고 의상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이 분들이 우리에게 불공을 해 주었다고나 할까 ….


우리 센터는 이주여성들을 어떤 사업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그런 일이 없도록 잘 해 왔다고 자부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스스로의 모순을 바라보게 되었다. 조금 경험이 쌓였다고 목에 힘을 주며, 이주여성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제공하면서 생색내려 하였던 점이 인정되었고, 수요자의 요구는 제쳐놓고 나름의 판단대로 결정하고 받으라고 강요하는 독재자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래서 종종 기운이 막혀 힘이 들었고, 이주여성들 중 일부는 발길을 끊은 것이었다. 연극치료 프로그램은 한걸음 한걸음이 이렇게 힘들게 진행되었던 반면, 한국어교실은 강도 높은(?) 숙제와 출결 점검이 있음에도 일정대로 순조로이 진행되는 것과 비교가 되었다. 이 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했다.


무엇이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능동적으로 진행해 나가지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데 억지로 요구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젊은 상좌가 참선을 하지 않는다고 꾸짖고 흉보는 노승에게 하신 대종사님의 말씀, 그 장면이 생생히 그려졌다.


우리는 감히 이주여성들을 도와준다고 마음병을 치료한다고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대상은 이들이 아니고 바로 우리였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는 동안 우리의 마음병이 드러났고, 물질문명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은 이주여성들로 인하여 그 병이 치유된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세상에서는 이들을 문제의 대상으로 보고 많은 일들을 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에 숨어있는 모순을 이제 알았으니 다행이다. 앞으로는 외부로부터의 후원이 보장되나 일방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프로그램에 눈길 주지 말고 우리 나름대로 서로 소통하며 재미있고 유익한 자력생활의 길을 찾아 나갈 것이다.


외국인센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