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성업의 큰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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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성업의 큰 뜻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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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경일 교무, 원불교 100년 기념성업회 사무총장

원불교 백년을 6년여 앞두고 기념성업회의 역사적인 막이 올랐다. 어느 조직이건 출범 백년을 맞는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일 것이다. 근세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인류는 전대미문의 문명사회에 대한 황홀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침탈은 급기야 두 차례의 혹독한 세계전쟁을 불러 일으켰고, 마침내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재편되어 오랫동안 갈등과 대립을 계속하는 가운데 과학문명은 날로 거듭 발전하면서 물신사회의 폐단이 극에 달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 실험은 이미 막을 내렸고 자본주의 역시 크게 그 진로의 수정을 요구받고 있다. 최근 미국으로부터 무너져 내린 금융위기는 그 확실한 증표다.


1916년 원각성존 소태산대종사여래의 깨달음으로 시작된 불법연구회(원불교)운동의 배경은 ‘후천개벽’의 시운(時運)이었다. 이 시운을 따라 선천의 문명은 점점 쇠하고 후천의 문명이 새롭게 발흥하게 되는데 이 때 문명의 기축(基軸)을 세우는 분이 이른바 구세성자(救世聖者)이시다. 대종사여래의 후천 시운의 판단은 천지개벽의 운수였다. 하늘도 새로 열리고 땅도 새로 열리는 천개지벽(天開地闢)의 세상이다. 인류문명의 관점으로 말하면 땅이 열린다는 말은 물질문명이 열린다는 뜻이요 하늘이 열린다는 말은 정신(도덕)문명이 열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교표어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


후천개벽의 도도한 물결은 우리가 하고 안하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주 대순환의 진리를 따라 열리는 새로운 세계다. 다만 이러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역리로 살 것인가, 아니면 이와 같은 진리를 받아들여 순리로 살 것인가의 문제다.


오늘날 세상을 보자.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세계는 지금도 과거의 국한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신문명의 중심인 종교도 지난 문명관습을 벗지 못하고 세계 갈등과 불목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세계보편종교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기성 세계종교조차 다른 문화권의 문화와 관습을 용해하지 못하고 충돌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세계 문명은 새로운 기점이 필요한 때다. 전 세계 인류를 통합하고 문명을 융통하며 평화의 세상을 이끌만한 어떤 ‘보편의 종교’가 요구되고 있다. 강연히 말하거니와 그 기준이 ‘일원상 진리’이고 그 진리를 천명하신 분이 ‘소태산 대종사 여래’시며 그를 뒤따라 앞장선 정신운동체가 ‘원불교’다. 우리는 백년성업을 당하여 이 믿음을 견고히 해야 한다. ‘이 진리보다 더 큰 진리가 없으며 우리 대종사님보다 더 높은 스승님이 아니 계시며 우리 회상보다 더 소중한 회상이 없음’에 대하여 한 치도 물러남이 없는 진리관과 스승관과 회상관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 믿음이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이고 수행의 기초이며 자신 성업봉찬의 핵심이다.


우리가 세상에 전해야하는 교화의 복음의 요체도 이 일을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의 사명은 이 개벽의 진리와 소식을 세계에 전하는 데 있다. 지금 세상은 일찍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 있다. 진리도 하나요 세계도 하나되는 대문명시대에 우리 회상은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문명과는 거리가 멀었던 저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구인선진이 이루셨던 방언과 법인성사는 참으로 놀라운 역사다. 도탄에 빠진 창생을 위하여 ‘죽어도 여한없다’시며 하늘의 뜻을 감동케 하신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인류의 복된 미래를 위하여 낱 없는 합력으로 이 교법을 전하는 데 우리의 정성과 역량을 총 결집하는 100년 성업이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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