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세계의 건설과 사요실천 2, 자력 양성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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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세계의 건설과 사요실천 2, 자력 양성의 길
  • 한울안신문
  • 승인 2008.1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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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현성 교도와 함께하는 정전공부 44


자력이란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힘을 말합니다. 각자의 자력이 없이는 각자의 권리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권리란 스스로 지키려는 자에게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세상도 내 권리를 지켜주고 존대해 주는 것입니다. 인권의 평등이란 자력 양성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대종사님께서 정전에서 말씀하신 사요의 하나인 ‘자력 양성’이란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첫걸음인 것입니다.


대산 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세계가 남녀 차별이 없어지고 인권차별이 없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 각자가 자력을 양성해야 한다. 자력 없이 서로 권리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력을 세워야 한다. 정신의 자주력(自主力)을 세우고, 육신의 자활력(自活力)을 세우고, 경제의 자립력(自立力)을 세워 놓아야 권리가 동일해져서 자연 인권 평등이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은 내 힘으로 살았는가? 빚을 지고 살았는가?’를 대조하여 수지(收支)를 맞추고 예축(預蓄)하며 살도록 하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대산3집 2편 88장>


또 말씀하시기를 “인격평등이 되려면 자력양성(自力養性)을 하여야 한다. 인격의 차별(差別) 원인(原因)은 부족(不足)함이 있어서이니, 나의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하루를 지내고 오늘은 자력으로 살았는가, 타력(他力)으로 살았는가를 반성해 보자. 자력이란 인격이다, 자력은 권리(權利)이다. 자력이 있어야 건설(建設)하고, 행복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며, 자력생활을 하여야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아니하고 남에게 미루면 그 힘과 복력(福力)이 그쪽으로 가므로 복도 또한 나에게 오지 않고 그쪽으로 간다. 그러기 때문에 도인(道人)과 위인(偉人)과 문명인(文明人)은 자력을 높이 알며, 자력생활을 하고, 미개(未開)한 야만인(野蠻人)은 타력을 의지하여 의뢰생활(依賴生活)을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민족이 다 같이 자력만 갖는다면, 우리나라는 바로 평화가 될 것이며 나아가서 세상 사람이 다 자력만 길러 갖는다면 세계의 인류는 평등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력을 세워 자력생활을 하자, 그래야 우리 대종사님의 법에 위배(違背)됨이 없으며, 세상을 파괴(破壞)하고 좀먹는 자가 되지 않고 세계에 도움을 주는 건설자가 될 것이다.”<대산2집 제1부 원만 평등한 세계 건설>


거품 제거와 자력 양성


대산 종사께서는 자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자주력[恒心]’, ‘육신의 자활력[恒身]’, ‘경제의 자립력[恒産]’을 길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참을 길러서 참되게 살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과 사람과 하늘을 속이지 않는 것이 참된 삶이라 하셨습니다. <대산1집 1편. 115장> 우리는 그동안 삶에 끼기 시작한 거품을 참된 실력이라고 착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따라서 자력 양성이란 삶에서 거품을 제거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로 온 나라가 온통 난리입니다. 그러나 이 난리의 근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원인은 다만 한 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끼기 시작한 거품 때문입니다. 부동산 가격은 하나의 예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국제적 금융 위기의 시작이 자본을 가진 사람의 부도덕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품이 낀 부동산 가격을 진짜 가격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맞춰 금융 상품을 만들었던 데에 지금의 미국 금융 위기의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경제는 돈의 순환이 생명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외환위기로 파탄에 빠졌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의 흐름에 영향이 가장 큰 건설 경기를 띄우려는 정책을 썼습니다. 은행 이자를 낮춰 대출을 늘리기 시작했고, 풀린 돈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아파트와 땅값을 천정부지로 뛰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진짜 가격이라고 착각했고 오른 부동산 가격에 맞춰 은행은 또 대출을 늘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경제의 거품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 거품이 빠질 때까지 우리는 다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정신으로 차근차근 쌓아가는 삶이 자력 양성의 첩경이라 하겠습니다.


원중불이(圓中不二)의 정신과 자력 양성


공자의 가르침을 몇 가지로 요약할 때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용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인 자사(子思)가 이르기를 ‘중야자(中也者)는 천하지대본야(天下之大本也)요, 화야자(和也者)는 천하지달도야 (天下之達道也)니 치중화(致中和)면 천지(天地)가 위언(位焉)하며 만물(萬物)이 육언(育焉)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대산 종사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대종사님께서 과거의 종교 사상을 종합해서 낸 것이 원중불이사상(圓中不二思想)으로 유교의 중(中)사상이 이천 오백년을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고, 불교의 원사상(圓思想)이 삼천 여년을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으나 앞으로의 시대는 한 쪽만 가지고는 안 되고 원중불이(圓中不二) 사상이라야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원중불이의 사상을 갖지 않으면 편벽된 사람이 된다. 교리에서 살펴보더라도 정신수양에서도 과거에는 염불종하는 염불만하고, 선종(禪宗)은 선만 하고, 주문만 외우는 이는 그것만 갖고 한다든지 하여 전부 한 부분만 가지고 했는데 대종사님은 그것을 통합하여 원(圓)이면서도 중이 되도록 하여 주셨다. 사리연구에서도 과거에는 이(理)와 사(事)를 분리하여 이판(理判) 또는 사판(事判)으로 쪼개었는데 우리는 이사(理事)를 병행(倂行)하게 하시었다. 또 작업취사에서도 취사를 할 때 과부족(過不足)이 없는 중도(中道), 중심(中心), 중화(中和)를 취사의 요점으로 하신 것은 원만하면서도 중(中)을 잡으신 것이다.”라고 ‘중용의 도’를 강조하셨습니다. <대산3집 2편 82장> 자력 양성의 진정한 길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에 낀 거품을 제거해서 생활에서 거품을 제거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정신 수양과 사리 연구와 작업 취사의 삼학 공부를 병진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력이 양성된다 할 것입니다. 자력 양성을 통해 천부의 권리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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