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세계의 건설과 사요 실천 7, 공도자 숭배와 생활 평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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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세계의 건설과 사요 실천 7, 공도자 숭배와 생활 평등 2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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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현성 교도와 함께하는 정전공부 50

대산 종사께서는 정전에서 대종사께서 밝히신 사요, 즉 공도자 숭배의 ‘공도주의’가 곧 세계 평화의 근본이 되고, 공도자를 숭배하여야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어진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습니다. “첫째, 세계가 좋아져야 각 국가가 좋아지고 국가가 좋아져야 각 가정이 좋아지고 가정이 좋아져야 각 개인이 좋아질 것이니 우리가 먼저 서로 이 공도주의를 실천함으로써 인류의 생활은 골라지고 세계평화는 자연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공도주의는 세계평화의 근본이 된다. 셋째, 공도자를 숭배하여야 생활평등이 되어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어지고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어져야 세상이 두루 골라져서 서로서로 웃음 속에서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세상에 제일 높은 어른은 천하에 제일 이익을 많이 주고 가신 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대산1집 정전대의 8> 그래서 공도자를 부모같이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공도자를 부모같이 섬기면 이 세상에 공도주의가 실천되어 사람의 생활이 평등하게 골라질 것임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대산1집 진리는 하나 5>




# 성직자와 공도자


성직자는 공도자라 할 것입니다. 예타원 종사께서는 성직자의 개념에 대해 법문집 <생사대도>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해 주셨습니다. “성직자라고 하면 성인(聖人)의 인품을 갖추고자 인격을 갈고닦는 데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으로서 성자들의 심법을 오롯이 체 받고, 성자들의 업(業)인 인류 구제에 몸 바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다. 성자(聖者)가 아니지만 성자가 되기를 간절히 서원하고, 노력할 각오가 선 사람이면 재가(在家)와 출가(出家)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성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직자 중에는 성자인 분도 계시겠지만 대개는 아직 성자가 아닌 분으로서 성자의 인품을 갖추고자 성자의 심법을 체 받고, 인류 구원을 위해 몸 바치기를 서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성자의 인품과 심법을 체 받기 원하면서 인류 구제를 위해 간절히 서원하고 노력하는 데에는 출가와 재가를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도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어디를 가나 진리와 함께 하며, 인류 구원을 위해 몸 바칠 것을 서원한 분들이신 성직자는 기본적으로 공도자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타원 종사께서는 법문집에서 ‘성직자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성직자의 제복은 곧 수도하겠다는 표시요,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약속이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개인이나 사인(私人)이 아니라 세상을 돕고 인류를 구제해야겠다고 스스로 나선 공인(公人)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수행(修行)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사회 구제와 인류 구원의 책임을 자임하였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타인이 억지로 떠맡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택한 것이다. 그러자면 끊임없는 내적 자기 변화의 수련을 쌓아야 한다. 인류 구제의 소임을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인격을 기르기 위해서 수행 적공은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출가든 재가든 성직자로서 서원을 세운 사람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본래 내 성품에 기초한 온전한 마음인지 아닌지를 대조하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행과 적공이 쌓였을 때 내적인 자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수행과 적공을 통해 쌓여진 내적인 자기 변화는 자연스럽게 밖으로 기질 변화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성직자가 대중 앞에서 거칠고 둔탁한 자신의 기질에 대해 변호하듯 나 생긴 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공인인 성직자가 아니고 사사로운 사인으로서 행한 발언이라 할 것입니다.


성직자는 사인이 아닌 공인으로 살면서 오고 가시는 분들이므로 어디를 가나 진리와 함께하고, 진리와 통하며, 진리계에서 응하는 분들입니다. 마치 대통령의 명을 받들고 가면 그가 별사람이 아닐지라도 그 나라에서 국빈으로 대우하고, 그 사람의 말이 책임 있는 말이 되듯 성직자는 공인으로 진리에 따라 살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공도자로서 받들어 드린다고 하겠습니다.




# 공도자와 공도의 주인


공도자는 공도의 머슴이 아닌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공도의 머슴으로 살아서는 절대로 공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정산 종사께서는 공도의 주인이 되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공부나 사업이나 주인의 심경으로 하는 이가 있고 머슴의 심경으로 하는 이가 있나니, 주인의 심경으로 하는 공부는 삼세를 통하여 이 공부만이 영원히 제도 받는 길인 것을 자신하고 하기 싫으나 하고 싶으나 남이 알아주나 몰라주나 간에 꾸준히 힘을 쌓아 가는 것이요, 머슴의 심경으로 하는 공부는 스승이나 남의 이목에 끌리어 마지못해 하는 공부며, 사업계에서도 공중의 소유를 내 것 같이 알뜰히 아끼고, 교중의 권속을 가족같이 알뜰히 챙기며, 교중의 근심을 자기의 근심으로 삼고 교중의 낙을 자기의 낙으로 삼아서, 이해와 고락을 교단과 같이 하는 것이 주인의 사업이요, 교중의 재물이 소모되고 교중의 명예가 손상되어도 자기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이 건성으로 대하며, 약간의 공이 있으면 상(相)만 남아서 불평이나 하고 남이 알아주는 것이나 헤아리는 것은 머슴의 사업이니라. 주인은 알뜰하고 상이 없기 때문에 알뜰하고 국한 없는 공이 돌아오나니, 주인의 공부와 주인의 사업을 꾸준히 계속하면 마침내 시방 세계가 오가의 소유인 지경에 이르게 되며, 이러한 인물들이 우리 회상의 큰 주인이 되나니라.”라고 하셨습니다.<법어 공도편 15> 공도를 행하였을 때 행하였다는 상(相)이 맘에 머물면 공도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점 티끌 없는 마음공부로써 공도의 주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타원 종사께서는 생사대도에서 공도를 위해 헌신하면 자신의 죄업도 가벼워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업을 가볍게 하여 깨끗이 정리할 때 비로소 팔자를 고쳤다고 할 것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신문 지면에서 ‘자살’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이것을 보면 자살하면 모든 것이 청산된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한 번 지은 업은 자살한다고 면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아주 죽는 폭 잡고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목숨을 바칠 각오로 당처에 불공하고, 공도의 주인이 된다면 죄업도 녹아서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돈암교당/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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