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질소리가 내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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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질소리가 내게 묻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2.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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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류법인 교도의 모스크바의 창 6

드-윽, 드-윽, 싸-악, 싸-악….


또 눈이 오시나보다. 이른 새벽이건, 늦은 밤이건 눈만 오면 창밖에서 들려오는 눈 치우는 소리…. 이불 속에서 더 오랫동안 꼼지락거리고 싶게 만드는 포근한 비질소리. 눈 많은 이곳에서 눈 하나 없이 말끔하게 청소된 거리를 걷는 기분은 또 얼마나 상쾌한지….


가만!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모스크바 청소부들이 부지런해졌지? 꼭 출퇴근 시간에 맞춰 길을 떡 가로막고 온갖 먼지며 쓰레기를 길 가는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소련 때부터 청소부의 위력이 너무나 대단해 자기가 가진 쥐꼬리 만한 권력이라도 반드시 남용하고자 한다는 뜻의 ‘청소부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회자될 정도였는데. 그래서 흘러간 소련 영화들을 보면 “왜 내 얼굴 쪽으로 비질을 하느냐?”고 항의하는 행인에게 “나는 국가에 대한 나의 신성한 의무를 다 하고 있을 뿐인데 왜 방해를 하는 거냐, 당 집행위원회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려보자!!”고 악다구니를 치는 청소부가 양념처럼 끼어 있곤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 왜 요새는 청소부가 다 아시아인들일까? 전에는 대부분이 러시아인들이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중앙아시아에서 사람들이 대거 모스크바로 몰려들어 오면서 그 사람들을 건설현장, 청소 같은 허드렛일에 주로 배치시킨다고 했다. 노동허가 쿼터가 얼마 되지 않아 정식취업이 극도로 힘든데, 그나마 모스크바시 당국이 정식으로 고용하는 사람들이 청소부다. 맡은 구역이 더럽거나 민원이 들어오면 노동허가가 취소되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 온 청소부들은 밤이고 낮이고 시간에 관계없이 눈만 오면 부리나케 치워야 한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방 한 칸에 대 여섯 명이 함께 생활을 하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은 고향에 송금한다. 중앙아시아에는 따직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벡스탄 같은 나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외지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져 나가는 곳이 우즈벡스탄이다.


우즈벡 지도부의 독재와 부정부패가 만연한데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무슨 전제군주 치하 같다. 돈이 되는 사업은 대통령 측근과 식구들이 다 맡아하고, 작년에는 우즈벡스탄 대통령 딸이 금궤를 싣고 왔던 모스크바행 특별기가 적발되어 러시아당국에 금궤상자를 압수 당하는 일도 있었다. 또 우즈벡스탄 대통령이 어디 한 번 행차를 하면 그 인근은 일주일 전부터 통제를 해 장사를 할 수 없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절대 창밖을 내다보아서도, 손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했다.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치부되어 저격당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이렇게 대하는데 반정부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운 날씨 덕에 썩어 날 정도로 풍성하던 과일과 야채마저 일반인이 사먹기에 너무 비싸져버렸다. 외국자본이 투자한 케첩공장과 통조림공장으로 과일과 야채가 다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입관세가 너무 높아 필요한 물건들도 그림의 떡일 뿐이요, 우즈벡스탄 내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은 정권의 비호를 받은 기업들의 독과점 때문에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린다.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외국인에게 분풀이를 하는 러시아 극우주의자들의 타겟이 되는 이들이 바로 이 아시아인들이다. 얼마 전에는 살해까지 당했다. 하지만 그 나라 정부가 항의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우리는,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내 자식들은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넘버원을 외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묻는다. 너희들은 왜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서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하려 하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 사람도 있고, 조롱하듯 비웃으며 묻는 사람도 있다.


드-윽, 드-윽…. 싸-악, 싸-악…. 또 눈이 오시나보다. 자정 넘은 이 시각에도 눈을 치우네.


싸-악, 싸-악….(그래 지금도 이 비질 소리가 포근하니? )


싸-악, 싸-악…. (영하 이십 도나 되는 한 밤중에 나도 이렇게 남의 나라 와서 청소부할 줄 몰랐어. 정치나 국가, 대통령, 이런 게 다 나와는 무관한 일인 줄 알았다고…. 나는 땅 파서 농사 지어 자식만 잘 키우면 되는 줄 알았어.)


밤은 깊어 가는데 비질소리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너희는 어디에 서 있느냐고, 너희는 어디로 흘러가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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