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의 병진과 도덕 훈련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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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의 병진과 도덕 훈련6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3.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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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현성 교도와 함께하는 정전공부 56

대산 종사께서 일러주신 ‘작업취사 공부법’을 계속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7. 넉넉한 처사를 본받는 공부


대산 종사께서는 마음을 써 나가되 될 수 있는 대로 부드럽고 넉넉하게 쓰기를 공부하여 과거 현재 모든 도인들의 처사하신 행동이나 글이나 말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을 너그럽고 크고 넉넉하게는 할지언정 막된 말이나 막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옛 성현님들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 또는 ‘내가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으면 천지의 모든 좋은 기운과 사람들의 좋은 기운이 나에게 응하지만 만일 여유 없는 일과 행동을 한다면 천지간의 모든 악한 기운이 모여들어 자연 나에게 해가 오고 나의 앞길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큰일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원망을 품고 있어도 천지 기운이 막혀서 그 일을 성사(成事) 하기가 어렵다’라고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남의 앞길을 열어 줄지언정 남의 앞길을 막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8. 중도(中道)를 잡는 공부


또 말씀하시기를 ‘매일 살아나갈 때 원근친소와 희로애락의 경우를 당해서 끌리지 말고 중도를 잡아서 처사하며, 또는 공부를 해 나가는 데에도 동정일여(動靜一如) 공부와 영육 쌍전(靈肉雙全)의 공부와 사업을 병진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삼학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도 수양을 잘한다고 해서 늘 좌선만 한다든지, 연구를 잘한다고 해서 늘 생각만 계속한다든지, 취사를 잘한다고 해서 늘 행(行)에만 국집 될 것이 아니라 선(禪)할 때는 선하고, 연구할 때는 연구하고 행할 때는 행하여 오직 중도를 잡아서 어느 곳 어느 일에 기울어지지 말고, 우치(愚痴)하거나 과(過)하거나 불급(不及)함이 없게 하는 것이 천하의 대도(大道)이므로 중도 잡는 공부에 노력해야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 상(相)을 없애는 공부


또 말씀하시기를 ‘상이 떨어진 행이라야 천지 같은 무위 자연행(無爲自然行)이 될 것이요, 부처님 같은 대 무상행(大無相行)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상이 있으면 마치 화분에 든 나무와 같아서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금강경에 이르시되 일체상을 떠난 것이 곧 부처라 하셨고, 정전에서도 천지의 응용무념(應用無念)의 도룰 체받으라 하셨습니다. 노자께서도 상덕(上德)은 덕이란 상이 없으므로 참다운 덕이 된다고 하셨으니, 공부인은 상을 없이 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10. 심신(心身)을 원만(圓滿)하게 잘 쓰는 공부


또 말씀하시기를 ‘일상행활 중 우리가 마음을 쓰고 말을 할 때, 보고 들을 때, 또는 몸을 동작할 때, 어느 때를 막론하고 공부삼아서 원만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같이 두렷한 마음을 가져야 육도 사생을 다 사랑할 수 있으며, 두렷한 말을 해야 삼계범성(三界凡聖)에게 다 들려 줄 수 있고, 두렷한 눈을 가져야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를 밝게 볼 수 있으며 두렷한 귀를 가져야 인천계(人天界)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원만한 법을 행하여야 삼계중생을 다 제도할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의 심신 동작하는 바가 모두 일원행(一圓行)이 되면 대정성행(大精誠行), 대진실행(大眞實行), 대겸양행(大謙讓行), 대 해탈행(大解脫行), 대무상행(大無相行), 대중도행(大中道行), 대보은행(大報恩行), 대자비행(大慈悲行), 대원만행(大圓滿行) 등의 덕행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요약하여 말씀하시기를 ‘취사의 요령을 말하자면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뭇선을 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는 것이니, 옳음을 취하면 이(利)가 생하고 그름을 버리면 해(害)가 멀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대산2집 제1부, 삼학공부 참조>


믿음과 서원과 계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업취사 공부의 기초는 계문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정산 종사께서는 계문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계율은 수행자의 생명이요 성불의 사다리니, 심신의 철없는 요구에 추종하여 혹 등한한 생각이 나거든 본래 목적에 반조하여 죽기로써 기어이 실행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법어 무본편 25장> 계문을 지키지 못하는 수행자는 빛 좋은 개살구나 보기 좋은 납도끼가 될 수 있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결코 먹을 수 없습니다. 보기 좋은 납도끼로는 수수깡 하나 자르기 힘듭니다.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존재로 타락하게 됩니다. 계문이 무너지면 우리의 밝은 영성이 무너지고, 밝은 영성이 무너지면 공부할 마음도 사라지고, 시비이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무뎌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계문을 등한시 하면 어떤 업무가 주어졌을 때 헤쳐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사라집니다. 매사에 정성이 부족하고 대충대충하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빛 좋은 개살구나 납도끼로 타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보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계문에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계문에 철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승행을 할 수 있는 힘이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문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과 서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과의 진리와 불생불멸의 진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계문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인과의 진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실제 계문을 지키는 것이 내게 어떤 이로움을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계문을 지키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인과의 진리가 다음 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살고 있는 금생에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계문을 지키는 삶이 삼학 공부의 기초가 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계문을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공적영지의 광명이 빛을 발하려면 계문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계문에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문에 철저할 수 있으려면 서원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서원에는 내 목표가 바로 저기인데 여기서 머무를 수 없다는 깨달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암교당/대통령실 연설기록담당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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