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만나 세상 살맛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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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만나 세상 살맛 납니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3.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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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류법인 교도의 모스크바의 창 7

일요일, 법회 후에 마음공부를 한다. 통역을 담당하던 원신영 교우가 한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뒤에는 예전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다. 교무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신영 교우가 러시아어로 통역하고, 러시아 교도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내가 한국어로 통역을 하곤 했다.


신영교우가 떠난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사람도 많이 줄어버렸다. 고정 멤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법회 후 희망자가 있으면 마음공부를 하고 없으면 하지 않는 식이 되어버렸다. 신영 교우 없이 양방향 통역을 하게 된 나는 한국어에 맞는 러시아 단어를 찾느라 골머리를 썩는다. 원불교 전문용어들을 제대로 외워두지 않은 게 엄청 후회된다.


어느 순간 마음공부 시간이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구체적인 행동은 해보지도 않고 그리스정교와 개신교와 불교와 원불교의 차이점 및 공통점 같은 불투명한 지식과 관념의 세계를 주저리 주저리 말하는 사람이라도 통역하게 되면 이건 거의 죽음이다. 일심! 일심! 하고 아무리 속으로 외쳐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계로 눈길이 간다.


그러다가 가끔씩 완전히 무장해제 당할 때가 있다. 살아 온 이야기를 진솔하게 고스란히 드러내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그렇다. 뾰뜨르 씨의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스탈린정권 하에서 일본군 첩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총살당했다 한다. 열다섯이 될 때까지 쥐와 벌레가 돌아다니는 토굴 같은 움막에서 살았고, 물이 귀한 곳이라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을 떠다가 식수로 사용하며 살았다. 병 걸려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이 기적 같은 열악한 삶의 조건이었다.


우즈벡스탄에서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며 수박농사며 목화농사를 짓다가, 연해주로 옮겨가 배추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홍수가 나서 80톤이나 되는 배추는 물론 집도 살림도 모두 다 떠내려가는 일을 몇 번 당하자 손을 털고 모스크바로 오게 되었다. 건강이 안 좋은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이곳 모스크바로 왔을 때에는 그야말로 빈털터리였다. 지금은 모스크바에서 2시간 거리의 뚤라 주에 땅을 구해 집을 지었다. 난방도 수도도 가스도 없지만 그래도 비는 피할 수 있다. 난방이 안 되어 모스크바에서 직장 생활하는 자식들의 임대주택에서 겨울을 나고, 여름에는 뚤라의 시골집에 가서 산다.


이렇게 살아 온 이야기를 풀어 놓던 뾰뜨르 씨는 원불교를 만나서 세상 살맛이 난다고, 사는 일이 행복하다고 한다. 늘상 마음속에 울분이 가득 차 있어 술도 많이 마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기도 하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윽박질러 사람들과 다툼도 잦았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이젠 술과 담배도 끊고 아주 착실해져서 부인이 무척이나 좋아하신다고 한다.


“내 인제꺼정 이 세상은 나쁜 사람이 더 잘 되고 맴씨 좋은 사람은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다 생각하니까는 분한 맘이 많았지. 고저 내 생각이 그랬지. 맘이 분하면 자기만 바쁘지(힘들지). 원불교는 다르지 글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다 한 가지로 이 세상에 쓸모 있다 갈친다 말이오. 그 말이 맞다 말이오. 사람도 나무나 풀, 꽃이랑 매 한가지지. 고저 있는 고대로, 지 생긴 고대로 사는기야. 그래, 있는 고대로 봐 줘야 하지.”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지 않고, 내 생각과 관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다 혼자 힘 빠져하고, 회의하고 비관하던 나에게 뾰뜨르 씨는 엄청난 법문을 들려주신다. 처음 교전을 접할 때 말씀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거리던 느낌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매너리즘에 빠져 그 말이 그 말 같아지는 요즘. 왜 사람들은 공부하러 교당에 오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던 시기를 지나 주중의 직장생활 끝에 일요일 하루 늘어지게 자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어지는 요즘. 교당과 교무님께 있어줘서, 여기 먼데까지 와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또 하는 뾰뜨르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까지 환해진다. 진실한 마음 하나가 단숨에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녹여 버린다. 뾰뜨르 씨의 넉넉한 마음에 감동된 나도 내 마음을 전해본다.


“교무님! 말도 잘 안 통하는 팍팍한 해외생활, 점점 커가는 교도들의 마음 하나 보시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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