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100년 성업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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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00년 성업의 의의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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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경일 교무, (원불교 100년 기념성업회 사무총장)

원불교 100년이 6년 남았다. 아직도 6년이나 남았다며 느긋한 사람도 있겠지만 실무를 책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매어 못 쓰는 법. 그래서 100년성업회의 올해 일정은 분주하다. 그 중에도 ‘백년 성업의 비전’ 수립과 ‘주요사업계획’의 발굴이 으뜸과제다. 벌써 관련 워크숍만 40여 차례 진행되었다.


100년 성업의 의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오십년 결실, 사오백년 결복’이라는 대종사님 법문과 정산종사의 부연법문을 생각해보는 것이 순서일 듯 싶다. 교운의 미래에 대한 무수한 말씀이 있지만 이처럼 때를 짚어 하신 말씀은 이 법문은 거의 유일무이하다. 사오십년 결실이란 일원대도(一圓大道)가 이 나라에서 인증을 받게 된다고 하신 말씀이다. 또 사오백년 결복이란 일원대도가 세상 구석구석에 널리 전해져 창생을 구원하게 된다는 말씀이시다.


아직도 이 나라에 영세한 교화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자탄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한국사회에서 원불교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만큼 되었다. 재가출가 교도님들의 신실한 신앙과 수행이 빚은 결과다. 이에 교화운동에 박차를 가하면서 사오백년 결복을 향한 세계로의 진출이 바로 개교 백년이 갖는 핵심 의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종법사님께서도 이제 교화의 시야를 세계로 돌려 ‘세계 주세교단의 건설’이라고 짚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세교단이란 미래 세계의 문명을 주도적으로 열어나가는 교단의 위상을 강조하시는 것이리라.


우리 회상은 원각성존(圓覺聖尊) 소태산대종사여래께서 애초 그 문을 열면서부터 묵은 세상의 청산과 새로운 문명세계 건설을 주창해 왔다. 선후천(先後天)의 뒤바뀜을 따라 물질문명이 열리는 세상에 ‘정신개벽’의 필요함을 외쳐왔으며 하나되는 세상에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을 모토로 우리의 교화행보를 계속해 왔다. 지금 세상의 흐름을 내려다보면 정말 ‘일원대도’의 복음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문명은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풍요와 편리를 누리고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상은 하나가 되었지만 여전히 묵은 신앙 관습들은 서로 장벽을 쌓고 문명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의 여호와신과 아랍의 알라신, 그리고 인도의 힌두신과 동양의 불(佛)과 천(天)이 끊임없는 불협화음을 일으키면서 하나의 문명세계 건설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이제 세상은 모든 종교의 여러 신들을 하나로 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보편의 진리가 요구되고 있다. 폴 틸리히가 말한 ‘신(神)들의 신(神)’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모든 부처님과 성현의 깨치신 궁극의 마음인 일원상의 진리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지금 세상은 하나로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요원하기만 하다. 여기에 새 회상 원불교의 시대적 사명이 있다. 여기에 새 회상 원불교의 정체성이 있다. 이 소식이 바로 소태산대종사 여래 출현의 함의이고 우리들이 나아가야할 비전이다. 원불교 100년은 밖으로 이 복음을 널리 전하는 것이라면 안으로 우리들의 신념을 다시 확인하고 무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대종사님과 9인선진께서 법인기도를 통하여 마지막 사념(私念)을 놓아버림으로서 백지혈인(白紙血認)을 나투신 것처럼 우리 모든 재가출가 인연들은 사사(私邪)없는 마음으로 원불교 100년의 대의를 향하여 모으자.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인류의 문명세상 개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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