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의 삼 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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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의 삼 세근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6.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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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12

지난 2월초, 지리산에 은거해 계신 어느 시인을 찾아가 정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시인의 이웃에 사는 한 여자 분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 분의 집에 초대를 받아 차를 한 잔 대접받았습니다. 그리고선 지난 세월을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댁 방 벽에 커다란 관세음보살 사진액자가 세 개나 걸려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관세음보살을 주송하며 관세음보살처럼 사는 것이 소원이라 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이 산 저 산 떠돌다가 여러 절에 의탁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 왔는데, 절에서 돌아가는 일이랑 스님들의 하시는 행동이 영 마음에 걸려 “절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의구심이 들었답니다. 결국 이대로 살면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절에서 뛰쳐나와 지리산 깊숙이 들어가 갖은 약초와 자연을 벗하며 살았습니다.


그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관세음보살이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모두가 부처이고 우리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관세음보살님이 행하는 불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홀로 산 속에서 고행을 하다가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의 진리를 깨달으신 것이죠.


그 후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지리산 칠불사 입구에 자리를 잡고, 그야말로 지리산에서 캔 약초와 좋은 산나물 등으로 웰빙 식단을 만들어 남편을 치료했는데 큰 효과를 보았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 널리 퍼져 말기 암 환자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결국 문전성시를 이루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를 해주며, 야생차 등을 따 인연 닫는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이 분의 손길이야말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부처님으로 모시고 사랑을 베푸는 보살행이 아닐런지요?




옛날 어떤 수행자가 동산(洞山)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화상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삼이 세 근이다.(擧. 僧問洞山 如何是佛 山云 麻三斤)”


무엇이 부처냐고 묻는 질문에 자기가 입고 있는 삼베옷이 세근이나 나가는데, 바로 이것이 부처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수행자가 운문(雲門) 선사에게 찾아가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똥 묻은 막대기(乾屎ꠙ ꠓ)” 라고도 했답니다.


이 세상에 부처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도가 높아 구중궁궐 같은 큰 절 선방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도인들이 부처입니까? 아니면 대웅전 한 복판에 높이 앉아계신 존엄하신 불상만 부처입니까? 아니옵니다. 천하의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 삼베 짜는 여인도 부처이고, 똥을 푸는 청소부도 모두 부처입니다. 또 몸을 파는 창녀도 거지도 모두 부처입니다. 동산 화상은 이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삼 세근”이라 했고, 운문은 “똥 묻은 막대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원불교의 새 부처님께서는 우상을 타파하고 불상을 모셔야 할 그 자리에 진리를 모셨습니다. 그러면 그 진리가 무엇이냐? 바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이고,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진리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무명중생(無明衆生)이고 이 진리를 깨치면 불보살(佛菩薩)인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보면 이 세상 모두가, 심지어 일초일목이 다 부처로 보이는 법입니다.


우리도 법당에 모신 일원상(一圓相) 만을 부처로 알면 큰 일 입니다. 저 지리산 속의 어느 여인이 깨친 것처럼 “처처불상 사사불공”,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부처로 모시게 마련입니다.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불공으로 여겨 숱한 중생을 보듬으며, 땀 흘려 번 정재로, 아니면 이 튼튼한 육신으로, 그것도 말을 안 들으면 마음으로라도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를 깨달은 우리 일원 인이 자기가 처한 곳곳에서 중생을 향해 이 한 몸 불살라가는 진정한 산부처가 되지 못한다면 일원대도를 배운 본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절대 진리인 / 禪의 경지에선 / 마음이 곧 부처라 / 마 세 근도 / 똥 묻은 마른 막대기도 / 한 마음 통하면 / 모두 다 부처이니 / 곳곳마다 부처(處處佛像)요 / 일일마다 불공(事事佛供)이네.’


여의도교당, 원불교문인협회장






편집자 주


*동산(洞山 910~990): 중국 섬서성 봉생부 출생, 법명은 수초(守初), 16세에 출가. 운문문언(雲門文偃)을 참예하고 법을 이었다. 조동종 시조인 동산양개(洞山良介)와는 다른 인물이다.


*운문(雲門 864~949): 중국 절강성 가흥출생, 법명은 문언(文偃)이다. 17세에 지징(志澄) 율사에게 출가한 뒤 설봉의존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후에 운문종을 개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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