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가와 쉘터, 무차별의 불성이라
상태바
16가와 쉘터, 무차별의 불성이라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6.18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이성하 교무의 미국교화 이야기

무료 주차 칸에 차를 대려고 보니 그 자리에 침낭을 뒤집어쓰고 단잠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이제는 홈리스들이 조금씩 밖으로 나와서 자기 시작하나 봅니다. 콜로라도는 겨울이 긴 편이고 일교차가 심해서 오월에도 길거리에서 자기는 쉽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날씨가 변덕스러워 매일 한차례씩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 새벽녘은 만만치 않게 쌀쌀합니다. 저렇게 자고 나면 몸이 온전치 않을 것인데 하는 심난한 생각을 하며 자고 있는 분을 피해 옆에다 주차를 하면서 보니, 한쪽에서는 새벽 댓바람부터 마약을 사고파는 것 같습니다. 은근 슬쩍 다가와서 은밀히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데 평범한 눈치가 아닙니다. 모르는 척 해야지 빤히 쳐다봐서는 안됩니다. 아침 다섯 시 홈리스 쉘터로 들어가는 주차장 입구에서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쉘터 옆 공터에는 대낮에도 마약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산으로 얼굴만 가리고 앉아 해가 동동한 시간에 마약에 취해 누워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경찰도 다 알테지만 매일 쉘터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수야 없으니 어쩌다 한번씩 나타나서 눈에 보이는 뻔한 단속을 하는 눈치입니다. 쉘터는 덴버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 두 블록 아래로 내려가면 덴버를 소개하는 관광 책자에 언제나 등장하는 초고층 빌딩에 갤러리, 뮤지엄, 쇼핑 몰,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16가가 있습니다.


한 두 블록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넥타이에 커피 머그를 들고 다니는 세상과 한 쪽은 쉘터 앞 공터에서 마약을 사고 파는 세상이 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각기 저마다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숙자는 상당 부분 경제적인 문제와 맞물려 시작된 생계형이라면 미국의 노숙자들은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같은 정신적인 문제에서 시작해서 경제적 파산으로 끝나게 되는 케이스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일한 마이클은 장성한 자녀가 넷이고 손주들도 있고 집 또한 한 시간 정도 밖에 걸리는 않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약 중독으로 이곳 쉘터에서 산지 4년이 된다고 합니다. 심장 수술을 한 후 직업을 놓쳐 마약을 시작하고 우울증이 오고 그러다 완전 폐인이 되고 결국 홈리스가 되어 여기 저기 전전하다 쉘터에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현재 치료와 재활 교육을 받는 사람인데 가족 얘기, 손주 얘기를 할 때면 입이 귀에 걸립니다. 매니저들 또한 이곳에서 재활 교육이 끝난 쉘터 출신들이거나 사회 복지를 공부하는 무보수 인턴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멀쩡한 사람들이 한 때 쉘터 앞을 서성이는 홈리스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입니다.


지난 주에 매튜라는 매니저와 얘기를 하던 중 교육 프로그램 중에 예배도 보고 설교도 듣고 하지만 다른 아무 프로그램이 없다면서 이 사람들에게 요가를 가르쳐주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대낮부터 마약을 하는 장면을 창문 너머로 서로 쳐다보며 아마 밥을 퍼주는 것 보다 숨 쉬는 법 하나를 가르쳐 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튜왈, ‘이 사람들은 극단으로 움직이거든. 밸런스가 필요해. 정신적 밸런스 말야.’ 글쎄요. 아마 7월 언제쯤이면 저는 홈리스 쉘터에서 다리를 어깨에 걸고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콜로라도교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