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교화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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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교화 어떻게 생각할까?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6.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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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경일 교무 , (원불교 100년 기념성업회 사무총장)

개교 100년의 최대 화두는 교화다. 교화를 통해서 새 회상 원불교 정법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이로서 인류 보편종교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일이다. 정법의 가르침이 세계 인류의 삶의 길잡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아직 초창기의 영세함에 머무르고 있는 교화망의 확장이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교화를 교당 짓고 교도 수 늘리는 것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은 과거 붓다나 예수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살고 있다. 과거 붓다의 시대는 언어가 충분히 보급되지 못하였고 교통과 통신수단이 걷는 것 외에 따로 없었다. 그래서 손수 걸어 다니며 법을 전해야 했다.


기껏해야 말을 탔을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사도 바울 역시 평생을 전도여행을 통해서 복음 전파에 힘썼다. 불과 150여년전 동학의 수운이나 해월 때도 역시 포덕을 위해서 전국을 봇짐을 지고 걸어서 다녀야 했다. 자동차도 없고 전화도 없고 방송도 없기는 붓다나 예수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교통과 통신수단이 천지개벽이란 말로도 감당이 안될만큼 발달했다. 맘만 먹으면 하루 이틀 사이 세계 방방곡곡 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방송은 시시각각 세계의 모든 정보를 주고 받는가 하면 개인적으로도 전화를 통해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은 문서는 물론 사진과 동영상으로도 모든 소통과 교류가 가능한 꿈같은 세상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종교처럼 이웃나라와 지역에 복음과 진리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수백년씩 걸릴 이유가 없는 환경에서 우리 교화사업은 이뤄지고 있다. 사람들의 인지 능력 역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열린 세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인류가 어떤 형태로든 글을 깨우치고 있고 과거와는 비교가 안되는 지식의 소통과 양을 가지고 살고 있다. 교서를 세계 주요 언어로 한 제대로 된 번역이 시급하고 인터넷 망에 보급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 과거에는 법을 전하기 위해 자고 일어나서 걷기를 거듭했지만 지금은 법을 전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사회 모든 문명방식이 변한 것처럼 전법교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또 달라져야 할 것이 있다. 교화에 대한 철학의 문제다. 교화는 교무님이나 교도님들이 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큰 교화는 법신불(비로자나 부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모태 중에서 중생제도를 마쳤다 하신 화두처럼 법신은 스스로 구족하신 교화의 세계를 성취하신 분이며 그럴 능력과 자비를 가지신 분이다. 내가 잘해서 교화하고 내가 잘못해서 교화가 안된다고 지나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런 교화는 자칫 잘하면 교만에 빠지고 잘못되면 실의에 빠지기 쉽다. 다만 우리는 이 정법을 전하기 위해 주어진 사명에 대하여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결과를 계교하지 말고 오직 정법의 광명과 자비와 위력에 대하여 신실한 믿음과 정성을 가지고 신명을 다해 전할 따름이다.


많은 사회 지식인들이 원불교의 종교적 가르침이야말로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 탁월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물질문명이 만개하는 세상에 정신문명을 주창하고 세상의 장벽이 무너진 가운데 종교다원성 사회에 적합한 교리의 우수함을 말하고 있다.


아마 우리 모든 출가 재가 교도들 역시 교법의 탁월함과 시대적 필요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교법으로 자신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새로운 문명사회를 만들어내는 실천을 통해서 정법의 가치를 증명해내고 정법의 사회적 정당성과 시대적 정당성을 증거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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