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수가 적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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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수가 적은 부부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7.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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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울 속의 거울 / 구훈모 , (분당교당, 서울가정법원조정위원)

남편(37세) 김영기(가명)는 체격이 보통인 외과의사로서 친구와 둘이 외과의원을 개업하여 운영하고 있다. 2남2녀의 막내인 영기씨는 말수가 적고 온화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열 살 위인 형은 이혼을 하였다. 종합병원 근무 시 친구의 소개로 현재34세 아내인 이명숙(가명)씨를 만나 한 달 데이트 후 결혼했다. 두 사람은 충분히 사귈 시간은 없었지만 직업, 외모, 가정 등 외적조건이 괜찮았고 지겨운 전문의도 끝나고 개업도 해서 새 생활을 시작하면 행복할 것 같아 결혼을 했다.


아내는 네 자매 중 막내이고 어려서부터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며 공학 박사를 취득하고 집과 연구실 밖에 모르는 학구파이다. 신랑 체격이 적은 듯 했지만 의사이고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별생각 없이 결혼을 했다. 이명숙씨는 공부밖에 몰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편이고 성에 대해서도 무지한 편이었다.


신혼여행을 가서 임신이 되는 통에 심한 입덧과 출산전후로 직장과 신혼, 엄마역할을 감당하기에도 벅차서 신랑과 함께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었고 신랑이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그 역시 늦게 귀가하고 바빠서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아이가 6개월 되었을 때 부부는 시가방문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게 됐고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남편은 말없이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돌아온 남편은 별거하자는 말을 남기고 짐을 가지고 가출하여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다가 두 달 후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남편은 가출 후 50만원씩 아이 양육비를 계속 보내왔고 명절과 돌날 선물을 보내왔다. 생활비는 명숙씨가 벌어서 해결하고 있다.


위 사례는 말수가 적은 전문직 남편과 아내가 신혼생활 부적응과 의사소통 부재로 이혼의 위기에 처한 부부에 관한 상담사례이다. 상담의뢰를 받은 후 김영기씨와 이명숙씨를 따로 만나보았다. 정해진 2회 상담으로는 부부를 화해시키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동안 대화부재로 막혀있던 부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김영기씨가 제기한 주된 이혼사유는 6호 ‘성격차이’였다. 두 사람의 성격이 서로 안 맞아서 혼인생활을 지속 할 수 없고 앞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격차이란 맞추어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젊은 세대는 성격차이로 인해 개인의 행복(남편이든 아내든)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결혼생활의 안정은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경향이 크다.


90년대 이후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중 6호(6호:불신, 혼수시비, 성격차이, 생활무능력, 과도한 신앙생활, 의처(부)증,주벽, 상대모욕, 사치, 낭비, 시(처)가 갈등 등등)로 인한 가족해체건수가 가장 높고 그중에서 ‘성격차이’로 인한 가족해체 빈도가 가장 높다.


그는 아내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 분노 같은 감정도 없고 그냥 담담하다고 했다. 타고난 성격이 서로 안 맞아서 인지 아내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정들 사이도 없었다.


출산 후 아내는 부부관계도 거부하였고, 퇴근하여 집에 가도 관심도 없이 밥 만 차려주고 말을 한마디도 안했다. 집안 분위가 항상 냉랭하였고, 각자 다른 방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아내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집에 가도 집 같지가 않는데 어떻게 돌아가겠느냐고 했다. 자신도 역시 말이 없는 사람인데 둘 다 성격이 이 모양인데 더 살아 봐야 서로 불행해 질 것 같아서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명숙씨는 남편이 왜 갑자기 이혼을 하자고 하는지 영문을 몰라 답답해 했고 저쪽의 사유를 듣고 나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결혼과 더불어 불어 닥친 정신적 육체적 변화와 혼란에 적응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으며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린다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시간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고 했다.


한통의 전화도 없이 이혼소송을 낸 남편에게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으며 충격도 컸다고 했다. 남편 가출 후 괘씸하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에 먼저 전화도 안 걸었고 아이소식이나 화해의 손짓을 해본적도 없었다. 언젠가는 오겠지 하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2회 상담과정에서 명숙씨에게 남편에게 전화통화를 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보내도록 과제를 주었으나 남편으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였다. 명숙씨는 아이가 불쌍하다며 눈물을 내비쳤고, 아이에게 아버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 이혼에 응할 수 없다고 하여 이혼조정이 불성립되었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위의 사례는 전문직 맞벌이 부부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담을 하면서 결혼과 임신, 출산과 직장생활 등 아가엄마가 신혼에 처한 상황을 이해는 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관심부분은 아쉬운 점이 있어서 안타까웠다.


또한 김영기씨의 경우 막내여서 인지 남자입장에서 아내의 입장을 배려해주고 마음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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