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복의 일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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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복의 일원상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9.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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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20

우리 원불교의 상징이 바로 일원상(一圓相)입니다. 원불교 최고의 종지(宗旨)이며, 진리의 표상으로,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이고, 일체중생의 본성이며,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 언어명상이 돈공(頓空)한 자리, 그리고 진리 그 당체(當體)라고 새 부처님 소태산(少太山) 성존(聖尊)께서 밝혀주셨습니다.


필자가 처음 원불교 여의도교당에 친구의 손에 이끌려 첫발을 들여놓을 때의 광경이 생각납니다. 종교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친구의 간청에 못 이겨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것이 황금빛 일원상이었습니다.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형상인데도 묘하게 제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나서도 저 일원상은 아직도 제 가슴에 작은 불씨로 계속 타오르고 있습니다, 필자는 당시 교무님과의 첫 대면에서 “원불교는 무엇을 믿는 곳입니까?” 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일원상을 믿어 복락을 구하는 종교이고, 저 일원상이 진리의 상징이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 새카만 중생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과연 원불교를 믿으면 복을 받을 수 있는가? 무조건 믿기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원불교도 기복신앙이며, 미신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 의심이 계속 꼬리를 물었지만 여하간 사교집단은 아닌 것 같아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원상을 화두로 삼아 계속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무식한 중생은 이 일원상이 새 부처님께서 최초로 말씀하신 진리의 표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아득한 옛날부터 일원상의 진리는 있어왔고, 여러 부처님들이 천명하신 자리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가 지금에서야 시작되었다면 말이 안 되지요. 진리는 즉, 일원상은 아득한 옛날부터 까마득한 미래까지 영원토록 있어왔고 영원토록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 일원상을 최초로 그리셨던 분이 육조 혜능(六祖慧能)의 제자 혜충(慧忠) 국사였다고 선문(禪門)에서는 전해오고 있습니다. 혜충은 이 일원상을 제자 탐원(耽源)에게 전했고, 탐원은 이를 앙산(仰山)에게 전했으나 앙산은 이 일원상을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바로 그 앙산의 제자 가운데 자복(資福) 선사가 있었습니다. 그 스승이 태워버린 일원상을 자복 선사가 다시 그려보였답니다. 그러니까 앙산은 스승 탐원에게 일원상의 교의를 배우고 위산영우(ꠙ ꠓ山靈佑) 문하에서 선을 수행한 다음, 다시 스승 영우와 함께 위앙종(ꠙ ꠗ仰宗)을 개창하신 분인데, 아무리 일원상을 불태워 버렸다 하더라도 그의 제자 자복이 일원상을 그려 보였다는 것은 여전히 위앙종에서는 일원상을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예로, 하루는 상서벼슬을 하는 진조(陳操)가 자복 화상을 찾아갔는데, 화상은 진조가 오는 것을 보고 일원상을 그려 보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와서 앉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원상을 그려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이 말을 듣자마자 자복 화상은 방장실로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고 합니다. 『擧. 陳操尙書看資福 福見來 便畵一圓相. 操云 弟子任麻來 早是不着便 何ꠙ ꠙ更畵一圓相. 福便俺却方丈門.』




그럼 옛날 선승들이 도를 묻는 사람들에게 일원상을 그려 보이는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진리란 모자라거나 남음이 없이, 둥근 일원상처럼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것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일원상은 진정 ‘원동태허(圓同太虛) 무결무여(無缺無餘)’입니다. 즉 허공과 같고 모자라거나 남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면 시방삼계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인줄 알게 됩니다. 또 우주만물이 비록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제불·조사(諸佛祖師)와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 알며, 또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 같이 되는 줄 알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陰陽相勝)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또는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인 줄 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야 일원상의 진리를 믿으면 왜 복이 오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결국 일원상의 진리를 믿는 사람은 성품이나 인생살이도 둥근 원처럼 모자라거나 남음이 없는 원만한 인격을 이루게 되어, 만인의 추앙을 받고 영생을 통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네 인생이 어찌 일원상의 진리를 믿고 수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의도교당, 원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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