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라이스 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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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라이스 수프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10.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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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민 기자의 단어 너머 세상



- 2008년 2월 이스탄불에서 만들었던 설날 음식(?)




“누나, 오늘은 전화 해야하지 않을까?”


터키 이스탄불, 여행 떠난지 두달이 넘은 어느 날이었다. 꼽아보니 집에 전화한지도 보름이 지나있었다.


물어물어 찾아낸 국제전화는 보스포러스 강을 건너서였다. 남동생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 엄마! 우리 잘 있어요… 이스탄불엔 눈이 많이 와요… 그럼 건강하지… 그동안 국제전화 할 곳이 없어서… 죄송해요… ”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꾸고, 이쪽에선 내가 수화기를 받았다.


“그래도 오늘 설날이라고 딱 맞춰 전화도 해주고, 이번엔 다들 안왔는데 이제야 좀 명절같네. 새해 복 많이 받어~”


짧은 덕담을 나눈 채 통화는 끝이 났다. 전혀 몰랐던 설날.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갈라타 다리를 걸었다. 엄마가 그러는데, 떡국을 우리 먹을 것 까지 끓이고는 아차, 싶었대. 동생은 더이상 말이 없었다.


명절은, 그나마 가족과 얼굴 맞대고 밥 한끼 먹는 이 시대의 유일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시집가라는 잔소리에 천연덕스럽게 ‘당연하지~’하고, 집이 떠나갈 듯 윷을 놀아 설거지 당번을 정한다. 겸연쩍게 드린 얄팍한 봉투도 차비나 하라며 돌아오는, 전 부치며 한마디라도 더 나누는 시간. 그래서 연휴가 짧아도, 애인이 없어도, 할 일이 많아도 나는 고향으로 간다, 가족에게로 간다.


“… 닭 사다가 백숙이나 해먹을까? 죽 끓여서 나눠주고?”


떡국대신 닭백숙, 내가 낸 아이디어였다. 호스텔 주방에서 닭 한 마리를 삶고 이집트 쌀로 죽을 끓였다. 냄새에 숙박객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에서는 명절때 함께 음식을 먹는 거라며 ‘치킨 라이스 수프’ 한 그릇씩을 건넸다.


‘투데이 이즈 뉴 이어스 데이 오브 코리아(오늘이 한국 설날이야)’라는 말에, 갸우뚱하던 여행자들은 답례로 초콜릿이며 과자 등을 꺼내놨다. 우리는 금새 가족이 되었다.


“유아 마이 패밀리 투데이. 코리언즈 두 라이크 댓 인 할러데이.(너는 오늘 내 가족이야. 한국인은 명절에 그렇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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