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뿌리내려 살아갈 며느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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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뿌리내려 살아갈 며느리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10.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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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예주 , (원불교전국여성회장, 일산교당)

3년 전, 여성회에서 필리핀 출신의 이주여성 가족을 초청해 서울 나들이를 시켜준 적이 있다. 갓 돌이 지난 딸아이의 엄마이면서 미모가 출중하고 총명한 24살 부인에 비해, 약간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마흔이 넘은 남편의 모습을 보며 저들의 결혼생활이 평탄하게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했었다.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생기면 자신의 모습을 남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슬기롭게 결혼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의 결과를 생각하면 참으로 암담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외국인과의 결혼이 10쌍 중 한 쌍이 될 정도로 그리 별스런 일이 아니게 되었고, 일부 농촌에서는 거의 반 정도가 외국인 신부라고 한다. 나이가 차도록 아니 거의 중늙은이가 되도록 결혼 상대자를 만나지 못한 농촌의 총각들이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선 낯선 외국인과의 결혼도 마다하지 않는 동남아 저개발 국가 여성들과 그야말로 짝짓기 형태의 결혼을 하고 부터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2세가 태어나면서 우리의 농촌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어느 농촌에서는 몇 십 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희망적인 얘기도 있지만, 서로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한 결혼이었지만 농촌의 열악한 환경은 그들의 모국과 별반 낫다고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아직도 남아 있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남편과 시댁과의 갈등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서로의 언어가 익숙하지 않아 대화가 단절되어 발생하는 소통부재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의 자녀들은 한국말이 서투른 외국인 어머니로부터 언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여 언어발달이 늦어지고 이런 상태로 취학을 해서 겪게 되는 학습부진과 따돌림 현상이 심각하다. 장차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겪게 될 어려움은 가난의 대물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큰 위험 요소로 자리 잡을 우려가 있다.


이런 심각성을 알기에 정부에서는 지방의 여러 곳에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 교단에서도 이들을 위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광주여성회에서 시작한 ‘이모되기운동’은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다. 결연을 맺은 이모를 통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한국문화를 익히는데 도움을 주는 후견인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사)한울안운동에서 이민자 여성들이 체계적으로 한글을 익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자 시작한 ‘결혼이민자 우리말 대회’가 올해도 치열한 지방 예선전을 이미 치루고 한글날 본선대회를 앞두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주 여성의 가정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말을 가르쳤고 시간이 없는 이들을 위해서는 가정 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출복이 없는 참가자를 위해서 옷을 사 입혀 예선전에 참석시키는 정성을 쏟기도 하였다.


이렇게 언어 장벽에 시달리고 문화의 차이 때문에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심과 보살핌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제 이들은 외국인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려 살아갈 한국의 며느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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