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아과판, 용아가 선판을 건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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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과판, 용아가 선판을 건네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10.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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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23

14세에 출가하여 각지를 유력하다가 취미(翠微)와 덕산(德山)을 참예하고 후일 동산양개(洞山良价)를 만나 그의 법을 이어받은 용아(龍牙)가 아직 납자(衲子)일 때 하루는 취미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선판(禪板)을 가져오게. 그러면 일러주리라.”


용아가 선판을 가져오자 취미 화상이 그것을 받는 즉시 내리쳐 버렸습니다. 이에 용아가 지지 않고 대꾸를 했습니다.


“내려치는 것은 맘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거기에 조사가 오신 뜻은 없습니다.”


용아는 다시 임제(臨濟) 화상에게 찾아가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물었습니다.


“나에게 포단(蒲團)을 가져오게. 그러면 일러주리라.”


용아가 포단을 가져오자 임제 화상은 그것을 받는 즉시 취미 화상처럼 내리쳐 버렸습니다. 또 용아가 지지 않고 대꾸를 했습니다.


“내려치는 것은 맘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거기에 조사가 오신 뜻은 없습니다.”




擧, 龍牙問翠微 如何是祖師西來意. 微云 與我過禪板來. 牙過禪板與翠微. 微接得便打. 牙云 打卽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牙又問臨濟 如何是祖師西來意. 濟云 與我過蒲團來. 牙取蒲團 過與臨濟. 濟接得便打. 牙云 打卽任打 要且無祖師西來意.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재미없고 멋이 없는 교육방법이 바로 주입식 교육이라 합니다. 필자가 젊었을 때는 학생 수가 많아서인지 선생님들이 제자들에게 자기가 아는 지식을 설명하고 무조건 따라 올 것을 주문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무조건 믿고 외우고 따라하는 주입식 교육이 습관화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얼마 전 매스컴의 보도를 보니까 아직도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학급 학생 수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선진국처럼 토의식으로 가르칠 수도 없고 자기 의견을 창의적으로 말할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교육은 창의적이지도 못하고 자칫 선생님의 복제품을 만들 위험이 있으며 스승을 뛰어넘을 인재를 길러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도가(道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의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토론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스스로 터득해 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아무리 스승님의 말씀이라도 일단 한 번 의심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감정을 받는 것에서 상당한 공부의 진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필자가 입교한 당시만 하더라도 법회시간에 의심이 있는 일이나 감각감상이 있으면 교무님에게 문답감정을 받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젠 거의 어느 교당 법회를 가보더라도 이런 시간은 없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교도님들이 질문조차 두려워하고 질문받기를 몹시 꺼리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제도는 새 부처님 당시부터 문답 감정 해오(解悟)하는 시간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그 좋은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 가지는 못하더라도 수요가 없다고 팽개치는 일은 좋은 일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단에도 각종 회의나 법회, 모임 등에 가보면 거의 일사천리로 지도자나 교무님, 교단의 어른들의 뜻대로 일방적으로 이끌어져 갑니다. 대부분 교도님들이나 아랫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들이죠. 얼마 전 일어났던 ‘하이원 빌리지’ 사태가 이런 것을 단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최고 지도자는 무결점 원칙이라도 서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많은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이 맹렬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상총회를 열어야만 했을 정도의 잘못된 일이 강행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입니다.


잘못된 것은 분명히 NO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나 지도부에서는 이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가며 그 경륜을 성취시켜가야 합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꼬박꼬박 대꾸한다고 하여 입을 막을 것이 아니라 할 말은 하게하고 옳고 그른 것을 따져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런 학생이야 말로 세상에 나가 당당해지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며 책임도 질 줄 아는 그런 인재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자기 의견을 주장하다가 대선사에게 선판으로 얻어맞고, 포단으로 얻어맞아도 오히려 굴하지 않은 용아거둔(龍牙居遁)의 용기는 옳고 그른 것을 떠나 그 당당한 면모가 참으로 마음에 든 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런 패기가 있었기 때문에 용아가 훗날 임제의 적손(適孫)이 될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판(禪板): 좌선을 하다가 피곤하면 기대


어 쉬는 널빤지.


*포단(蒲團): 좌선을 할 때 깔고 앉는 둥근


방석.



여의도교당, 원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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