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300일, 원불교의 입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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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300일, 원불교의 입장은?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11.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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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정행 교무 , (본지 편집장)

오는 11월 15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꼭 300일째 접어드는 날이다. 계절은 어느새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 다시 그 참혹했던 겨울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그날 참사로 인해 잠든 사람들의 시계는 2009년 1월 20일 새벽에 멈추어 있다. 마치 100년이라도 된 것 같은 300일이란 긴 시간이 흘러갔지만 희생자들의 육신은 여전히 냉동고를 지키고 누워 있고, 그들의 영혼은 검게 그을린 을씨년스런 남일당 건물을 떠나지 못한다.


얼마 전 정운찬 국무총리가 국민의 신임이라도 얻으려는 듯 취임과 함께 서둘러 사고현장을 찾긴 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만한 해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용산사태의 빠른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기도를 벌이던 문규현 신부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고, 용산참사로 기소된 철거민들에게 법원은 전원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 끝이 일 년이 될지 이 년이 될지 아니면 삼 년이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실 용산참사 문제를 떠나 현 정부가 추진해 나가는 대다수 정책을 보면 도무지 소통을 하고자 하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디어법 문제가 그렇고 4대강 문제가 그렇고 세종시 문제가 그렇다. 국가 운명을 좌우할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데 있어 찬반이 없다면 그게 어디 말이 되나.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무작정 밀어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조금 더디더라도 소통을 위한 최소한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어쨌든 그 중에서도 삶과 죽음이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관여하고 있는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용산참사 문제 만큼은 우리도 그저 남의 문제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사안이다. 그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문제야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사자의 천도를 축원하고 영혼을 달래는 일만큼은 마땅히 종교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지나도록 희생자의 영혼이 여전히 구천을 떠돌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을 저버린 것은 아닐까?


이미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앞세워 문제 해결을 위해 참사현장에서 매일같이 미사를 봉헌하며 올인을 한 상태이고, 불교계 역시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자승스님이 취임과 함께 참사현장을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한 상태다. 그렇다고 아직 힘이 미약한(?) 우리 교단이 이 두 교단의 사회적 행보에 똑같이 발을 맞춰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종교계에 그 해법을 물어오는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을 할 때마다 이름뿐인 조직들을 앞세워 눈가림을 해 온 일시적인 대응방법으로는 이제 더 이상 우리를 내세우기에는 한계점에 다달아 있다. 용산참사 100일, 용산참사 200일, 희생자들의 영로를 위한 천도의식에 일부 교역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석을 했지만 정작 용산참사는 처음부터 우리 교단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로 존재하지 않았는가?


원불교 100년 성업의 제일 화두는 누가 뭐라 해도 교화대불공이다. 불공을 하는데 있어서 개인불공도 필요하겠지만 사회불공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개인의 안심입명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일에도 힘쓸 필요가 있다. 며칠 있으면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을 맞는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적어도 이 정도 시간이 흘렀다면 옳든 그르든 이 문제를 바라보는 교단의 입장 정도는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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