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호랑이다, 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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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호랑이다, 어흥!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12.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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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21세기 전래동화 한 편. 호랑이와 곰이 으슥한 산길에서 만났다. 잔뜩 겁먹은 곰은 생각했다. ‘아, 인간들의 이야기처럼 잃어버린 형님~ 해서 살아나가야지’ 그러고는 곰이 돌아서자, 호랑이는 ‘죽은 척’하고 있더란다.


또 하나. 내 오랜 친구 하나는 호랑이를 자꾸 ‘호랭이’라고 해서 때때로 나를 미치게 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호랭이라고 하면 왠지 뭐 안잡아먹을거 같잖아’라고. 호랭이 논란이 사그러진지 몇 년 뒤, 친한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준하(조카)한테 호랑이를 호랭이라고 가르친 거, 너냐?”




# 동서고금의 난제, 호랑이vs사자?


호랑이는 호랑이다. 얼마 전 전주동물원에서 호랑이와 사자가 맞짱을 뜨다 호랑이가 전사했을 때, 우리는 충격적인 슬픔을 느꼈다. 고대 로마 콜로세움에서부터 사자를 상대로 7:3 확률의 승전보를 울리던 호랑이 아니던가. 어른 숫곰까지 잡아먹고, 지구상에서 누구도 노리지 않는 코끼리(!)까지 사냥하는 호랑이는 또한 먹고 사는 일 따윈 혼자 해낸다. 온순하고 게으른 사자와는 달리 사납고 부지런한 호랑이는 늘 혼자 움직이며, 그게 가능할 정도로 지능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호랑이띠는 용감하고 관대하며, 타고난 배짱과 리더십으로 좋은 지도자가 된다고 한다. 다만 과격한데다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대인관계가 서투르다는 단점이 있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을 맞아 거칠고 터프한 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백호랑이의 해니 황금돼지해보다 더 좋다’는 이야기가 출산률을 팍팍 밀어주고 있다.


백호는 호랑이 중에서도 유난히 온순하다 하니, 단점을 좀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남성은 무관, 공직 분야의 진출이 많고, 여성은 의사, 약사 등이 많다. 음력 5~6월생이 특히 좋다고.






# 때로는 웃음을 주는 수호신


예로부터 호랑이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든든한 수호신이었다. 청룡·백호·주작·현무로 이루어진 사신 중 유일한 실제 동물이며, 물, 불, 바람에 의한 재해를 막아주는 부적인 ‘삼재부(三災浮)’는 보통 머리가 셋 달린 매와 함께 호랑이가 등장한다. 또 신부 가마 위의 호랑이 가죽, 호랑이 다리를 닮은 호족반, 어린아이의 머리쓰개나 베갯모 등에서 볼 수 있는 호랑이 문양도 잡귀를 몰아내고 좋은 것은 지킬 수 있다는 우리 민족의 믿음에 연유한 것이다.


그런 호랑이에게도 천적이 있으니 바로 ‘곶감’이다. 새해를 맞아 호랑이띠 고객에게 상주곶감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보고 간만에 즐겁게 웃었다.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해도 계속 울던 아이가 ‘옛다, 곶감’ 하니까 뚝 그쳤고, 그걸 보고 곶감이 자기보다 무서운 놈이라고 생각한 ‘용감한’ 호랑이님, 전래동화에서 한 줌도 안되는 토끼나 여우한테 자꾸만 당하는 어수룩한 매력도 있는 이 호랑이님은 특히나 ‘떡 하나’를 좋아하신다.


호랑이 모양의 우리 땅에 사는 호랑이들은 어떨까. 서울동물원의 세 호랑이는 ‘영토’·‘지킴’·’독도’이며, 한 사파리의 호랑이 세 자매는 그 이름도 여성스럽기 그지 없는 ‘유비’·‘관우’·‘장비’(?)란다. 이런 얘기도 있다. ‘백운이’라는 백호의 애칭을 흰 털에서 따와 ‘화이트’라 지었는데, 사육하던 실습생이 노상 ‘하이트’라고 불렀단다. 그러다 보니 같이 태어난 다른 두 마리도 ‘라거’와 ‘카스’가 되었다는 허무하고도 슬픈 이야기다.






# 잃어버린 소신과 결단력을 찾아서


그래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2009년 힘겨운 세상 우직하니 소처럼 살아온 우리들은 이제 호랑이처럼 포효할 한 해 앞에 섰다. 각종 ‘라인’과 ‘게이트’가 만연하고, 소신과 결단력 따윈 몇광 년쯤 실종되어 있는 삶이지만, 의리와 정의를 중시하며 타협할 줄 모르는 호랑이 같은 2010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은혜와 감사 안에서 걸어갈 경인년이 이제 막 시작됐다. 도덕 교과서에서나 보고 덮어두었던 가치들을 추구하는 멋진 호랑이들의 한 해를 꿈꿔본다. 어흥~!


민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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